유괴의 날(정해연) : 몰라서 아프고, 알아서 괴로운
Book 2022. 2. 23.
유괴의 날
저자 정해연 | 출판 시공사 | 발매 2019.07.17
책 소개
어느덧 다섯 번째 스릴러 장편소설을 출간하는 정해연 작가는 지금까지 주로 인간 내면의 악의와 소름 끼치는 이중성을 묘사해왔다. 첫 장편 스릴러인 <더블>은 사이코패스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섬찟하게 다루는 데 성공, 태국과 중국에서 출간되었고, 스타 정치인이 등장하는 <악의>에서는 인간의 저열한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는 임대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아파트 관리인이 주인공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기존 스릴러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설정을 현실적인 사건 속에 흥미롭게 풀어내어, 선이 굵고 잔혹한 스릴러뿐만 아니라 가벼운 일상 미스터리에도 탁월한 필력을 인정받았다.
<유괴의 날>은 작가가 이러한 장기를 발휘한 작품이다. 유괴를 소재로 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서툴고 인간적인 30대 남성 명준과 천재적인 두뇌로 매사 냉철한 판단을 하는 10대 소녀 로희, 둘 사이의 엉뚱한 케미스트리가 웃음을 준다. 그러면서도 스릴러로서 정체성은 잊지 않는다.
딸의 수술비를 위해 유괴를 결심한 명준은 범행 중에 실수로 교통사고를 낸다. 차에 치인 아이는 유괴하려던 소녀, 로희. 사고로 기억을 잃은 로희는 명준을 아빠라고 착각하고 이리저리 부려먹는다. 명준은 서둘러 로희를 돌려보내려 로희의 부모와 통화를 시도하지만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급해진 명준은 로희의 집을 염탐하러 가는데, 그의 눈앞에서 실려 나가는 부부의 시체! 설상가상, 기억은 잃었어도 천재 소녀라 불리던 두뇌는 그대로. 로희는 명준의 어설픈 거짓말을 알아채는데…….
저자소개
정해연 (지은이)
장편 소설 『더블』을 시작으로 다수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썼고, 어린이, 청소년 등 폭넓은 독자를 위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유괴의 날』은 드라마, 『구원의 날』은 영화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 몰라서 아프고, 알아서 괴로운
.욕심.
과한 욕심은 독이다. 쉽게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에 사람의 목숨이 거래되고,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된다.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선 욕심은 자기합리화 속에 갇혀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애쓴다. 합리화는 무언가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확신할 때 싹트는 자기방어의 수단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자의 정체가 수면 위로 드러날 때면 그들의 생애 또한 주목받는다. 각종 방송사는 출생과 가정사를 읊으며 범죄의 배경에 대해 살을 붙인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너무도 싫다. 삶이 불행하다고 해서 누구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끔찍한 범죄자들의 자기합리화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 들어 속이 뒤틀린다.
적어도 내가 떠올리는 파렴치한들의 범죄 중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살기로, 그런 일을 저지르기로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것뿐이다. 그러니 '환경 때문에'라는 말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실례이자 지독한 편견이다.
.힘.
아는 게 힘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 두 문장은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알기에 다행인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아는 것이 어떤 일에 도움이 될 때면 보람을 느꼈다. 이미 알고 있는 불행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아는 것이 힘'이라는 문장에 기대어 살았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외쳐도 바뀌는 것이 하나 없다. 그러한 종류의 좌절감은 차라리 몰랐을 때가 나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두 문장 중 어떤 것이 옳을까. 안다는 이유로 힘을 행세하거나, 모른다는 이유로 끝없이 배제되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나는 그 어느 편도 들을 수가 없다. 책 속 '로희'는 기억을 잃어 괴로웠다. 그러나 기억이 돌아오고, 너무 많은 진실과 마주하게 되자 더욱 괴로워했다. 그 아이의 괴로움이 책 너머의 나에게까지 전이되어 가슴이 아프다. 그 누구도 몰라서 아프지 않고, 알아서 괴롭지 않아야 한다. 이제는 아는 것에 상처받지 않도록, 몰라도 힘 있게 살 수 있도록 욕심을 덜어낼 때다.
책 속 한 문장
혜은은 말했었다.
세상은 꼭 잘못한 사람에게만 불행을 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 같은 분야 책 살펴보기 전체보기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튼, 요가(박상아) : 가벼운 동작들로 가득 찬 삶 (0) | 2022.03.07 |
---|---|
모순(양귀자) :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도록 (0) | 2022.02.28 |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김준) : 평생 빚지고 살아갈 것들 (0) | 2022.02.22 |
베니스의 상인(윌리엄 셰익스피어) : 완전한 중간은 없다 (0) | 2022.02.20 |
작별 인사(김영하) : 숨을 거둬야 숨 쉴 수 있다면 (0) | 2022.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