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저자 신경숙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4.01.15 > 삶을 담은 글은 절규와 닮아서.숨. 글자만이 적힌 종이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다. 코끝이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와 흙, 먼지 따위의 냄새가 섞여 공간을 메운다. 거친 살갗이 손등 위로 스치고, 가녀린 목소리는 내 귓가에 성큼 울렸다가 이내 사라진다. 신경숙의 은 그런 소설이다. 너무나 생생하고 섬세해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분이 든다. 그 감정이 혹여나 부서질까 책장을 넘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한 사람의 고뇌를 엿보는 듯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제주 바다 앞에 서 있는 작가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작가와 함께 지금의 바닷바람을 느꼈다가, 아픈 과거에 마음이 미어졌다가, 그것을 옮겨 적으려 시간을 더듬..
다정한 유전저자 강화길 | 출판 아르테 | 발매 2020.10.14 > 새겨진 다정함으로 연결되는 우리.우리. 사람은 비슷하다. 같은 종(種)에서 기인하는 공통점이다. 강화길 작가의 《다정한 유전》은 그런 맥락에서 나의 뿌리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이 책은 불친절하다. 단편인지, 연작인지 그 구조조차 가늠하기 힘들고, 이것이 등장인물의 현재 진행형 이야기인지, 회상인지, 소설 속 소설의 내용인지 헷갈리는 것투성이다. 화자가 풀어내는 상처들은 나의 아픔이 되었다가, 너의 기억이 되었다가, 끝내 우리의 마음에 다다른다. 작가가 그려낸 모든 인물은 '나'인 동시에 '너'이다. 그렇기에 '우리'다. .다름.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출연하는 모 교양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가끔 떠오른..
젊은 ADHD의 슬픔저자 정지음 | 출판 민음사 | 발매 2021.06.25 > 평범이라는 환상.아픔.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은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저자의 평범한 이야기이다. 또한 과거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앞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이며, 독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위로이기도 하다. 아프다는 것은 때때로 약점이 된다. 몇 글자도 안 되는 낯선 병명이 앞으로의 삶을 정의할 때면 헛웃음이 나온다. 가끔은 병명이 나의 명(名)보다 더 내 삶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픔은 스스로를 직면하게 만든다. 끝끝내 외면하던 일들도 똑바로 마주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큰 아픔을 겪은 뒤 더 크게 도약하는 사람들을 나..
마른 여자들저자 다이애나 클라크(지은이), 변용란(옮긴이) | 출판 창비 | 발매 2021.07.30원제: Thin Girls (2020) > 1킬로그램의 가능성.마름. 다이애나 클라크의 《마른 여자들》은 쌍둥이 자매 로즈와 릴리가 각각 거식증, 폭식증을 겪게 되며 발생하는 일을 다룬 소설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울리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공감과 동질감, 연민과 안타까움이 온 데 섞인 아주 복잡한 감정에서 기인함에 틀림없다. 누구나 건강한 신체와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고 있지만 아름다움 앞에 그 모든 것은 예외가 된다. 미(美)의 기준에는 언제나 마름이 포함되어 있다. 저체중의 사람들이 미디어에 쏟아지고, 대중은 그들을 치켜세우고 칭찬한다. ..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저자 유지혜 | 출판 김영사 | 발매 2021.11.08 > 가장 두려운 동시에 용감한.정의. 유지혜 작가가 담담히 적어 내린 진심을 읽으며 내 삶에 스며든 가치들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단어를 마주하면 그 단어를 정의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랑이란 어디에 있을까, 성공이란 어떤 모양일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은 내 경험과 생각을 거쳐 나름의 모양을 갖춘 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단어들은 너무나 유연해서 어떤 틀 안에 기꺼이 갇혀주지 않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랑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주 초라한 순간에서 성공의 향을 맡기도 한다. 마땅히 불행해야 할 상황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저자 N.H 클라인바움(지은이), 한은주(옮긴이) | 출판 서교출판사 | 발매 2004.03.30원제: Dead Poets Society(1989) > 죽음으로서 알게 된다면.두려움. 전력 질주해서 달려온 곳이 막다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다시 돌아갈 힘도 그럴만한 용기도 사라진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나는 다시 일어난다.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왔던 길을 돌아볼 때의 막연함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려움이 만들어 낸 몸짓이 이제껏 나를 살려왔다. 잘못된 방식으로 오랜 길을 걸어왔다고 그 인생까지 잘못된 것일까. 나는 살아있는 한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 출판 문학사상사 | 발매 2009.01.05원제: 走ることについて語るときに僕の語ること (2009) > 비로소 보이는 것들.하루키. 하루키는 나를 일으킨다. 가장 무기력했던 시절, 난 그의 책을 품에 안고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도 넘어져 있는 나를 일으키는 건 하루키의 책이다. 그의 대단한 팬이라거나, 전작을 탐독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빚을 진 채 살아간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책장에 꽂혀있는 그의 책들은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다. 하루키는 집요하다. 그는 삶의 무게를 스스로 늘려 극한의 상황에서 태어난 작가다. 어쩌면 그 집요함이 나를 하루키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하는 것엔 자..
야간비행저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지은이), 용경식(옮긴이)|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8.06.29원제: Vol de nuit(1931) > 마지막 비행일지라도.도전.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도전 사이에서 실패하고 성공한다. 내가 그것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작은 도전과 성패는 곳곳에 얕게 흩뿌려져 있어 의식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하루들이 모여 가시적인 성취를 얻어낸 후에야, 지난날들이 도전의 연속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힘을 주어 버티지 않아도 흘러가는 일들이 있다. 간절히 애써도 기어코 무너지는 일들이 있다. 삶의 모든 것은 제 흐름을 따라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