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손안의 죽음(오테사 모시페그) : 내면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진정한 해방

Book 2021. 8. 18.
728x90
728x90

그녀 손안의 죽음

저자 오테사 모시페그(지은이), 민은영(옮긴이)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21.04.13

원제: Death in Her Hands (2020)


 

 

 

책 소개

『아일린』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 이은 오테사 모시페그의 세번째 장편 최신작. 72세 여성 베스타가 살인과 시신 유기를 암시하는 쪽지를 발견하고 그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사흘간의 행적을 담은 소설이다. 유일한 단서인 쪽지에 적힌 ‘마그다’라는 여성의 이름에서 출발해 베스타는 직감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탐정이 되어 자신만의 추리 지도를 그려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그녀가 주변을 살피고, 이웃을 염탐하고, 도서관 컴퓨터로 검색해서 얻은 추리소설 작법 요령을 따라 마그다의 삶과 죽음을 추리하는 행위는 탐정보다 소설가를 닮은 듯도 하다. 베스타는 그 과정에서 마그다의 주변인물일 법한 사람들을 마주치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가 크고 작은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현실과 추정의 혼란한 경계로 스스로를 몰아간다.

이 소설은 작중의 주인공도 책을 펼친 독자도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게 한다. 따라서 쪽지 한 장만 가지고 사건의 내막을 추리하는 과정이 주인공과 독자의 공동 작업처럼 흘러가는 한편, 오직 주인공의 생각과 시선에 의지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와중에 그녀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 신뢰를 끊임없이 시험당하는 데서 이 소설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팽팽한 긴장과 의구심 속에서 질주한 이야기의 끝에는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베스타가 손안에 쥔 죽음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할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소개

오테사 모시페그 (Ottessa Moshfegh) (지은이)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바너드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브라운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바이스> <파리 리뷰> <그랜타> <뉴요커> 등에 단편소설을 게재했다. 2014년 중편소설 「맥글루McGlue」로 펜스 모던상과 빌리버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2015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아일린』으로 놀라운 장편 데뷔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2016년 펜/헤밍웨이상을 받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7년 소설집 『별세계를 그리워하며Homesick for Another World』로 스토리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8년 두번째 장편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가 연이은 호평을 받으며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 <가디언>과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개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십 년 주기로 발표되는 <그랜타> 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2017)에 선정되는 등 오늘날 영미 문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다.
민은영 (옮긴이)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며 『어두운 숲』 『사랑의 역사』 『거지 소녀』 『프라이데이 블랙』 『곰』 『아일린』 『내 휴식과 이완의 해』 『마블러스 웨이즈의 일 년』 『안데르센 교수의 밤』 『에논』 『친구 사이』 『불륜』 『존 치버의 편지』 『어떤 날들』 『그의 옛 연인』『여름의 끝』 『칠드런 액트』 『차일드 인 타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내면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진정한 해방


.억압.

 

 잔잔한 호숫가에 작은 돌멩이가 떨어지면 작은 파장이 호수 전체를 뒤엎는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 속의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변화가 하루를, 인생을 뒤집는 파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녀 손안의 죽음》은 남편을 잃고 외딴곳의 오두막집에 개와 함께 살게 된 72세 여성 베스타가 살인사건의 흔적으로 보이는 쪽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살인사건은 그녀의 지루한 일상을 파괴하는 발화점이 되고, 베스타는 치열한 내면과의 싸움 끝에 삶의 2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참고 견뎠지? p.111, 둘 

 

 

 억압이 무서운 이유는 자기 자신까지도 속여 고립의 상태로 이끌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생을 짓눌리며 살아온 사람들은 그 억압에서 벗어날 때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스라이팅이다. 베스타의 남편인 월터의 경우도 그렇다. '월터가 곁에서 나를 보호했기 때문에 나는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177쪽)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억압은 어떤 일도 혼자서 헤쳐나갈 수 없는 무력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월터가 세상을 떠난 뒤 맞이한 살인사건이라는 일종의 변화는 그녀의 일상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베스타는 원래의 무력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변화.

 

 이 책에서는 두 가지 개념이 대립하며 베스타가 겪고 있는 내면의 충돌을 보여준다. 단순히 말하면 이 책은 쪽지와 살인사건이라는 외부의 사건과 변화를 통해 의식이 되살아난 베스타가 오두막집과 남편, 찰리라는 내부의 고립과 억압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삶을 되찾는 이야기이다.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베스타는 현실과 상상을 종종 혼동하곤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들 또한 혼란을 겪는다. 살인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것인지, 그저 치매 노인의 흔한 착각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살인과 쪽지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 사건으로 작용할 뿐이다. 따라서 범인 찾기는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책이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범인과 사건의 진위에는 큰 논의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아지인 찰리와 남편인 월터는 유대감과 익숙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고립과 억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특히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이 존재들이 베스타의 새로운 시작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또한 익숙함과 편안함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은 억압과 고립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해방.

 

 월터는 죽었지만, 찰리는 계속 남아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베스타는 찰리가 사라졌을 때 굉장히 불안해하며 찰리를 찾기 위해 애쓴다.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낯선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은 찰리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윽고 '그간 숲에는 아무도 없었음을, 외부의 위협은 전혀 없었음'을, 여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건 바로 찰리였'(286쪽)음을 것을 깨닫는다. 가장 가까운 존재가 자신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깨달은 순간, 비로소 찰리에게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

 

 

 

 그녀의 이름은 베스타였다. 그것이 내가 내내 쓰려던 말이었다. 내 이야기, 내 마지막 대사. 내 이름은 베스타였다. 나는 살았고, 또 죽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누가 나를 알기를 바랐던 적도 없지만. p.289, 일곱 

 

 

 "내 이름은 베스타였다."(289쪽) 평생 누군가의 부인으로, 잘못된 이름으로 불려왔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녀는 이전의 삶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죽었으며,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살았다. 베스타가 '어둠의 일부'(290쪽)가 되어 더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레 섞여드는 모습은 진정한 극복과 해방의 의미를 담는다. 

 

 

 이 작품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먼저, 베스타라는 노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젊은이들의 특권처럼 여겨졌던 새로운 시작을 모든 이들의 것으로 탈바꿈해냈다. 더불어 내면의 오래된 쇠사슬을 주체 스스로가 부수어 내도록 함으로써 읽는 독자에게 주체성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 다른 이들만큼 유능하고 똑똑하고 자격이 있다는 것'(286쪽)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익숙함에 속아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럼에도 변화와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고 무서워 멈춰있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안다면 애초에 뭐하러 시작하지?"(101쪽) 나는 고립된 모두가 어둠에 완벽하게 섞여들 수 있기를, 내면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책 속 한 문장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 지 안다면
애초에 뭐하러 시작하지?

 

 


❣︎ 같은 출판사 책 살펴보기 전체보기

 

 

흰(한강) : 흰 것들을 건네며 삶을 껴안는 방법

흰 저자 한강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8.04.25 책 소개 2018년 봄,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새롭게 선보인다. 이 년 전 오월에 세상에 나와 빛의 겹겹 오라기로 둘러싸인 적 있던 그 <흰>에 새 옷을

onlyunha.tistory.com

 

 

시선으로부터,(정세랑) : 당신으로부터 뻗어나갈 이야기

시선으로부터, 작가 정세랑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20.06.05 책 소개 출판계에서 2020년 가장 많은 시선을 모은 문학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시선으로부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시선

onlyunha.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