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손안의 죽음(오테사 모시페그) : 내면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진정한 해방

Book 202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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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손안의 죽음

저자 오테사 모시페그(지은이), 민은영(옮긴이)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21.04.13

원제: Death in Her Hands (2020)


 

 

 

 

> 내면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진정한 해방


.억압.

 

  잔잔한 호숫가에 작은 돌멩이가 떨어지면 작은 파장이 호수 전체를 뒤엎는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 속의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변화가 하루를, 인생을 뒤집는 파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녀 손안의 죽음》은 남편을 잃고 외딴곳의 오두막집에 개와 함께 살게 된 72세 여성 베스타가 살인사건의 흔적으로 보이는 쪽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살인사건은 그녀의 지루한 일상을 파괴하는 발화점이 되고, 베스타는 치열한 내면과의 싸움 끝에 삶의 2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참고 견뎠지? p.111, 둘 

 

  억압이 무서운 이유는 자기 자신까지도 속여 고립의 상태로 이끌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생을 짓눌리며 살아온 사람들은 그 억압에서 벗어날 때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스라이팅이다. 베스타의 남편인 월터의 경우도 그렇다. '월터가 곁에서 나를 보호했기 때문에 나는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177쪽)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억압은 어떤 일도 혼자서 헤쳐나갈 수 없는 무력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월터가 세상을 떠난 뒤 맞이한 살인사건이라는 일종의 변화는 그녀의 일상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베스타는 원래의 무력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변화.

 

  이 책에서는 두 가지 개념이 대립하며 베스타가 겪고 있는 내면의 충돌을 보여준다. 단순히 말하면 이 책은 쪽지와 살인사건이라는 외부의 사건과 변화를 통해 의식이 되살아난 베스타가 오두막집과 남편, 찰리라는 내부의 고립과 억압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삶을 되찾는 이야기이다.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베스타는 현실과 상상을 종종 혼동하곤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독자들 또한 혼란을 겪는다. 살인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것인지, 그저 치매 노인의 흔한 착각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살인과 쪽지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 사건으로 작용할 뿐이다. 따라서 범인 찾기는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책이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범인과 사건의 진위에는 큰 논의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아지인 찰리와 남편인 월터는 유대감과 익숙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고립과 억압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특히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이 존재들이 베스타의 새로운 시작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또한 익숙함과 편안함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은 억압과 고립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해방.

 

  월터는 죽었지만, 찰리는 계속 남아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베스타는 찰리가 사라졌을 때 굉장히 불안해하며 찰리를 찾기 위해 애쓴다. 자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낯선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은 찰리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윽고 '그간 숲에는 아무도 없었음을, 외부의 위협은 전혀 없었음'을, 여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건 바로 찰리였'(286쪽)음을 것을 깨닫는다. 가장 가까운 존재가 자신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깨달은 순간, 비로소 찰리에게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는다.

 

 

 그녀의 이름은 베스타였다. 그것이 내가 내내 쓰려던 말이었다. 내 이야기, 내 마지막 대사. 내 이름은 베스타였다. 나는 살았고, 또 죽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누가 나를 알기를 바랐던 적도 없지만. p.289, 일곱 

 

  "내 이름은 베스타였다."(289쪽) 평생 누군가의 부인으로, 잘못된 이름으로 불려왔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녀는 이전의 삶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죽었으며,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살았다. 베스타가 '어둠의 일부'(290쪽)가 되어 더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레 섞여드는 모습은 진정한 극복과 해방의 의미를 담는다. 

 

  이 작품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먼저, 베스타라는 노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젊은이들의 특권처럼 여겨졌던 새로운 시작을 모든 이들의 것으로 탈바꿈해냈다. 더불어 내면의 오래된 쇠사슬을 주체 스스로가 부수어 내도록 함으로써 읽는 독자에게 주체성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 다른 이들만큼 유능하고 똑똑하고 자격이 있다는 것'(286쪽)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익숙함에 속아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럼에도 변화와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고 무서워 멈춰있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안다면 애초에 뭐하러 시작하지?"(101쪽) 나는 고립된 모두가 어둠에 완벽하게 섞여들 수 있기를, 내면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책 속 한 문장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 지 안다면
애초에 뭐하러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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