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윌리엄 셰익스피어) : 완전한 중간은 없다
Book 2022. 2. 20.
베니스의 상인
저자 윌리엄 셰익스피어(지은이), 최종철(옮긴이) | 출판 민음사 | 발매 2010.12.28
원제: The Merchant of Venice (1596)
> 완전한 중간은 없다
.신뢰.
《베니스의 상인》은 극 중 인물 사이의 관계를 그리며 다양한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다. 작품 곳곳에 스며든 우정과 사랑은 독자를 몰입시키고 감탄하게 만든다.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자신의 모든 면을 보여줄 수 없다. 사람들은 평생 서로의 일부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니 일부를 보고 전체에 대해 믿음을 던지는 이 '신뢰'라는 행위는 절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목숨을 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과 신뢰는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다.
.중간.
이 책의 유일한 악역은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일록뿐인 듯하다. 그러나 그를 악인으로만 볼 수 있을까. "유대인은 오랫동안 영국에서, 베니스에서, 그리고 유럽 사회 전역에서 오해와 편견과 그로 인한 핍박의 대상이었다."(136쪽) 그러한 관점에서 이 인물을 살피면 어딘가 마음이 아려온다. 그에게 있어 1파운드의 살덩이가 가지는 의미는 표면적인 것보다 훨씬 크다. 악랄함보다는 울분에 가깝고, 비인간적인 면모보다는 인간적인 포효에 알맞아 보인다. 책은 샤일록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완전한 선과 악이 존재하는가.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젓는다.
나에게 있어 감정의 가운데, 즉 평정심은 평생의 숙제다. 너무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싶으나 절대 쉽지 않다. "오, 사랑이여, 적당히 와 다오, 황홀감은 약하게 기쁨은 알맞게 내리고 이 넘침은 줄여 다오!"(77쪽)라는 책 속의 외침이 뼈저리게 와닿는다. 행복하고 기쁜 일에 주체할 수 없이 들떴다가도 진정하라며 되새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토록 중간에 매달리면서 그 중간이 무엇인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지혜.
내가 중간에 묶이기 시작한 이유는 덜 불행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 가라앉고 싶지 않아서다. 내게 주어진 행복의 총량이 너무 빨리 소진될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은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 감정은 유예할 수도, 적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이것이 반쪽짜리 평정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평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애썼던 지난날들이 조금은 어리석게 느껴진다.
나는 고민 끝에 양극단에 선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전한 중간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니 내게 찾아온 감정의 가운데를 찾기보다는 그저 수용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 아닐까. 극 중 포샤는 자기에게 주어진 감정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러나 집착하거나 머물지도 않는다."(143쪽) 모든 것이 흘러가는 대로 둔다.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되 집착하지 않고, 순간의 우울을 받아들이되 머무르지 않는다. 지나온 것을 추억하되 미련을 두지 않고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설 준비를 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지혜는 분명 그런 생김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지혜를 조금이나마 흉내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종이 사이 숨은 질문들의 무게가 삶을 짓누른다.


책 속 한 문장
이 세상 모든 것은
얻었을 때보다 좇을 때가 더 좋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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