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의 일(박서련) : 기를 쓰고 살아남아 반드시 행복해지기를
Book 2021. 10. 4.
마르타의 일
저자 박서련 | 출판 한겨레출판 | 발매 2019.09.25
책 소개
첫 번째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으로 성장과 투쟁의 여성서사를 보여주며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박서련의 두 번째 장편소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 호명되기도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며 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로 주목받은 박서련은 연년생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이번 장편소설을 통해 너무 쉽게 악몽으로 변하는 청년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봉사녀'로 인터넷상에서 일약 스타가 된 SNS 셀럽 리아가 죽었다. 리아의 개명 전 이름은 경아. 그녀의 가족과 오랜 지인들은 그녀를 경아라고 불렀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오직 착하고 예쁜 봉사녀 리아만이 존재했다. 급하게 마련된 리아의 장례식장에서 언니 수아는 경찰로부터 리아의 핸드폰을 건네받는다.
'경아가 자살을 할 만한 사람인가.' 아니었다. 수아는 그 사실을 경찰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동생의 기록들이 필요했다. 다시 경찰에게 돌려주기 전에 수아는 핸드폰 안에 든 동생의 자료들을 백업하기로 한다. 백업이 완료되자 핸드폰이 울렸다. 리아의 SNS 다이렉트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었다. 빈소 현황 스크린을 찍은 사진이었다. 이어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경아' 자살한 거 아닙니다.
저자소개
박서련 (지은이)
음력 칠석에 태어났다. 소개를 쓸 때마다 철원 태생임을 반드시 밝힌다. 시상식 때 입을 한복을 맞추려고 적금을 붓는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게임을 좋아하지만 승률은 높지 않다. 가위바위보조차도 잘 못 이긴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등이 있다. 테마소설집 『서로의 나라에서』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등에 참여했다. 한겨레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지금 무슨 생각해?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 기를 쓰고 살아남아 반드시 행복해지기를
.죽음.
이 책은 주인공인 '수아'가 동생 '경아(리아)'의 죽음을 좇는 과정을 그린다. SNS 셀럽이자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며 밝게 자라온 동생이 비극의 결말을 맞은 원인을 찾는 과정은 살기와 분노, 슬픔과 애정이 한데 뒤섞여 있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수아'의 감정들은 억압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을 꼬집는다.
연예인, 정치인 등의 유명인사들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사회에 일정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언행과 사생활은 많은 사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빈도가 성공의 여부와 직결되는 직업에서는 필연적으로 딜레마가 발생한다. 좋은 이야기로만 입에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인을 향한 악플 문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혀왔다. SNS에 찾아가 명예훼손을 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남기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을 정면에서 비추는 조명의 밝기가 거세질수록 그 그림자도 길고 어두워지는 모양새다.
'사랑받는다'는 이유가 모순되게도 누군가에게는 싫어할 만한 이유가 된다. 이에 열등감을 가진 이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을 만들어내고, 갖가지 살을 붙여 그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책 속 '경아'가 각종 루머에 시달리던 것이 소설 속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데는 현실에도 만연하게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
'경아'와 '수아'의 관계는 선악, 우열 등의 이분법으로 비치기 쉽다. '수아'는 감정이 무디며 냉철한 사람이고, '경아'는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싸우면 모질게 말하는 쪽은 '수아'였으며, 더 상처받는 쪽은 항상 '경아'였다. 이러한 표면적 사실은 '수아'가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껴 모나게 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저마다 그 깊이와 농도가 다르다. 감정에 무딘 '수아'는 '경아'의 죽음을 조사하며 살기와 분노 아래의 '사랑'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독자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교훈을 안겨줌과 동시에 타인 또, 본인에게 가진 편견에 의문을 던진다.
책 속에는 성경의 한 구절이 언급된다. 마리아의 언니인 마르타는 예수에게 가르침을 얻고 있는 마리아에게 부엌일을 도우라고 말한다. 그러자 예수는 부엌일만큼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며 마르타에게 말한다. 이는 언뜻 나무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마르타는 남자들 사이에 섞여 눈총을 받으며 가르침을 받는 "마리아가 안쓰럽고 불쌍해서 부엌으로 피하게 하고 싶었"(258쪽)을 것이다. 예수는 그러한 마르타의 마음을 알았다. 이에 마리아가 배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언급해 그녀에게 향한 눈총을 덜어냄과 동시에, '마르타의 일'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두 사람 모두를 지켜주었다.
우리의 의도는 때때로 각색되고 오역된다. 마르타의 말이 누구보다 마리아를 위한 일이었음도 또, 예수의 말이 마르타와 마리아 모두를 위한 일이었음에도 그 본질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말이다. 이 책도 표면에서 본질로 접근하기 위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자매의 끈끈한 연이 빚어낸 복수극이다. 그러나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여성'을 지키기 위한 '여성'의 분투가 보인다. 동생을 위한 복수를 준비하면서도 제 삶에 주어진 몫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완벽히 해내는 '수아'의 모습은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해보이는 '수아'가 자신의 삶도, '경아'의 삶도 포기할 수 없어 발버둥 치는 것 같이 보인다. 참으로 애처롭다.
.마르타.
삶의 수많은 시간 속에서 나는 마리아이기도, 마르타이기도 했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경아가 마리아라면 나는 마르타가 되어야 했다"(259쪽)는 '수아'의 말처럼 본인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일이다. 누군가가 마리아였기에 나는 기꺼이 마르타가 되어야 했고, 내가 마리아였기에 누군가는 마르타가 되었어야만 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그들이 되어야 했다.
멍하니 책 속에서 언급된 성경 구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종의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 외에는 그 무엇도 마리아를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르타가 마리아를 구해낼 수는 없었을까. 마리아가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익명'의 도움을 받은 '수아'가 예수의 도움을 받은 마르타와 겹쳐 보인다. 또한 그들의 노력에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맞은 '경아'와 여전히 뜨거운 눈총을 받고 있을 마리아가 겹쳐보인다. 흔한 이름이었다던 마리아처럼 우리 삶에도 수많은 경아와 수아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이렇게 악을 쓰며 살아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 두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복수극이 일단락되면서 평화가 찾아올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집 앞으로 배달 온 "피에 젖은 운동화 한 짝"(285쪽)은 어느 방향에서든 이 위태로운 삶이 또다시 위협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내던진다. 덤불 속 숨어있는 "칼을 든 괴한"(288쪽)을 찰나의 실수로 지나치게 되는 그 순간, 위험은 곱절로 불어나 삶을 담보로 잡는다. 살아가는 곳곳마다 칼과 피가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이 전쟁터 같은 삶 속에 각각의 외로움을 껴안고 잘 버텨내야 한다. '수아'의 곁에는 이제 '경아'가 없지만 '언니'가 남았다. '수아'의 마리아가 '경아'였던 것처럼, '언니'의 마리아는 '수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마리아이자 마르타로서 삶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를 잃고 다쳐도 제 삶을 꿋꿋이 살아내야 한다. 그 과정이 최대한 덜 아프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기에 내 몫으로 주어진 '마르타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련과 위협 속에서도 기를 쓰고 살아남아 반드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기도한다.
책 속 한 문장
경아가 마리아라면 나는 마르타가 되어야 했다.
그다지도 그 애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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