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정세랑) : 빛을 받아 스스로 빛을 내기까지
Book 2021. 10. 24.
지구에서 한아뿐
저자 정세랑 | 출판 난다 | 발매 2019.07.31
책 소개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정세랑의 두번째 장편소설. 칫솔에 근사할 정도로 적당량의 치약을 묻혀 건네는 모습에 감동하는 한아는 저탄소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그녀는 '환생'이라는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며 누군가의 이야기와 시간이 담긴 옷에 작은 새로움을 더해주곤 한다.
한아에게는 스무 살 때부터 좋아한, 만난 지 11년 된 남자친구 경민이 있다. 늘 익숙한 곳에 머무려 하는 한아와 달리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경민은 이번 여름에도 혼자 유성우를 보러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린다. 자신의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는 경민이 늘 서운했지만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한아.
때마침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져 소동이 벌어졌다는 뉴스에 한아는 걱정이다. 경민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딘지 미묘하게 낯설어졌다. 팔에 있던 커다란 흉터가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게나 싫어하던 가지무침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아를 늘 기다리게 했던 그였는데 이제는 매순간 한아에게 집중하며 "조금 더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달라진 경민의 모습과 수상한 행동이 의심스러운 한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어간다고 혼란에 빠지는데…….
저자소개
정세랑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산문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가 있다.
❥ 빛을 받아 스스로 빛을 내기까지
.사랑.
우리는 외관에 쉽게 호감을 느끼지만, 사랑을 마주하는 건 그 내면에서다. 사람마다 각자의 고유한 것들이 있다. 시간과 애정을 들여 꾸준히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그 고유함은 또 다른 유일한 세계를 움직이곤 한다. 나는 유일한 한 세계가 또 다른 유일의 세계를 흔드는 이 힘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주인공인 '한아'의 남자친구 '경민'이 우주로 떠나버리고, 또 다른 '경민'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한아'는 두 명의 '경민'이 같은 껍데기를 가졌음에도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의심하게 된다. 외관이 아무리 똑같아도 그 알맹이까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외모지상주의. 이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 역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들이 지나치듯 던진 외모 평가가 자신을 검열하는 체크리스트가 된다. 마른 게 예쁘다는 인식 탓에 며칠을 굶으며 살을 빼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숱하게 있다. 민낯이 잘못인 양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렌즈 없이 안경을 착용한 채 밖을 나가본 적이 손에 꼽는다. 요즘, 외관의 중요성과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자문해볼 만한 질문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외관이 하루아침에 바뀐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게 될까. 나는 한숨의 고민 없이 고개를 젓는다. 주어가 바뀌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유.
세상에는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가득하다. 내 발에 맞춰 길든 운동화, 손에 익은 키보드 자판, 내가 쓰는 노트 등 내 공간을 채우는 물건들이 그렇다. 그러나 단연 대체 불가능한 것은 사람이다. 목소리, 말투, 걸음걸이, 취향 등 모든 것들이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금 떠오르는 모든 이름이 지구에 하나뿐인 존재다.
이렇게 세상에 고유한 것투성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종종 그 가치를 잊는 듯하다. 먼저, 타인의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들에게 손가락을 하고 폭언을 퍼붓는다. 외관에 입각하여 수많은 잣대를 들이밀거나 끝없이 미워한다. 세상 밖으로 고립시키려는 듯 추락하기만을 바라며 기도하는 모습은 두 눈으로 확인해도 믿기지 않는다.
반면 자신의 가치를 갉아먹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규정짓고 문을 닫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고 자꾸만 내일의 나에게 모든 것을 미룬다. 하나밖에 없는 지금, 이 순간을 누리지 못하고 삶을 후회와 무의미 속에 갇혀 보낸다. 전자의 이들에게는 이해의 시간조차 내고 싶지 않지만, 후자의 이들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들에게 '지금 떠오르는 수많은 이름 사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나.
'한아'는 지구를 지킨다. 환경을 위해 헌신하고, 온 에너지를 쏟아 파괴로부터 달아난다. '주영'은 가수 '아폴로'를 응원한다. 그녀는 자신의 전부인 그를 응원하기 위해, '아폴로'를 따라 우주로 향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고 빛내는 힘이 있다. '한아'는 환경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때 더 반짝이고, '주영'은 '아폴로'가 걷는 길을 함께 할 때 환하게 빛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와 같은 열정은 유난으로 취급되곤 한다.
환경문제가 오지랖과 유난의 꼬리표를 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야 비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어떤가? 이상하게 이 분야의 소비는 낭비, 한심 등의 부정적인 키워드로 직결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쓸데없는 짓, 건강하지 못한 취미라는 딱지가 붙어 여전히 숱하게 조롱받는 것이 현실이다.
서로 고유와 개성의 가치를 인정해줄 때 비로소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평생을 그렇게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그럴 수도 있다며 다독이는 것이 누군가의 삶을 어둠에서 끌어 올리고, 빛나게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올라온 이들은 또다시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손을 건네고, 비로소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덜 의심하고 더 믿을 수 있을까. 세상에 있는 모든 악한을 잡아들이는 것이 앞선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 생애가 막을 내리기까지 아마 이 모든 의문 끝에 붙은 물음표를 떼지 못할 테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 돌아보았을 때 꽤 많은 물음표가 지워져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용을 기반으로 한 사랑이 진정으로 필요하다. 내가 가진 사랑의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테지만 끝까지 붙잡고 힘쓰고 싶다. 지구에서 하나뿐인 너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 하나뿐인 지구에서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책 속 한 문장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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