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 인문학 산책(이기주) : 삶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Book 2021. 2. 5.
이기주의 인문학 산책
저자 이기주 | 출판 밀리 오리지널 | 발매 2019.10.15
저자소개
이기주
말을 아껴 글을 쓴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쓴다. 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화장대에 담담히 꽃을 올려놓곤 한다.
지은 책으로는『언어의 온도』『말의 품격』『글의 품격』『한때 소중했던 것들』등이 있다.
목차
1부 말 : 언위심성, 말은 마음의 소리다
2부 글 : 본립도생,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
3부 삶 : 두문정수, 밖으로 쏠리지 않고 나를 지킨다
❥ 삶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
인간의 입술은 그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는 말이 있다. p.66, 1부 언위심성 : 9 긍정
이때까지 나의 삶을 돌아보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굉장히 많았고, 누군가에 의해 주저앉혀지기도 했다. 또 몇 마디 말이 내 마음에 비수로 꽂혀 아직까지 아리기도 하다. 요즘은 나를 다듬고 돌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색에 잠기면 내 짧다면 짧은 인생의 조각들이 뇌리를 스쳐가는데, 이만하면 잘벼텨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걱정, 근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2017년 말, 앞으로 내 인생이 또 내리막길을 향함을 깨달았을 때도 담담했다. 수학 학원을 빠져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 겨울바람을 쐐면서 담담하게 커피를 마셨다. 죽어도 싫던 곳에 다시 제 집처럼 드나들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살았다.
내 인생의 일련의 사건을 거쳐오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두 가지는 첫째, 담담한 사람도 사실은 괜찮지 않을 수 있고, 둘째, 어떤 사람이든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건넨 말들과 긍정에 기거한 행동들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긍정의 말을 뱉기로, 다짐했다.
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지는 행위는 소멸도 끝도 아니다. 의미 있게 패배한다면 그건 곧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상대를 향해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p.73, 1부 언위심성 : 10 전환
사과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애초에 사과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기면, 사과 본질에 이기적인 마음이 깃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내 마음 편해지려고, 내 잘못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면서 겉핥기식으로 건네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과는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을 열게 만들 뿐이다.
승부의 각축장에서는 이기는 자가 있으면 지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겨루는 일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앙금을 남긴다. p.69, 1부 언위심성 : 10 전환
항상 경쟁하며 살아왔다. 혼자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과거의 나와 싸웠다. 그래서 지는 것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책임을 지는 것도 싫어했다. 어른과 어른스러움을 끝없이 동경하면서,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더 갈망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2021년은 책임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어른스러움을 갈망하고, 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삶의 바깥쪽에서 서성이지 말고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런 것처럼 광장으로, 볕이 드는 곳으로, 삶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 p.239, 3부 두문정수 : 10 광장
책에서 욕심은 손잡이가 없는 칼과 같다고 말한다. 잘못 휘둘렀다가는 나도, 너도 다 다친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자. 빠르기와 반응속도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속도에 몰입해보자. 서두르지 않아도, 하고 싶다는 마음가짐과 의지만 있다면 미래에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와 끝없이 싸움을 붙이는 일도 이제 멈춰야겠다. 나의 오늘, 그리고 내일의 책임을 과거의 나에게 떠넘기는 일을 그만 할 것이다. 그래야 삶의 바깥쪽이 아닌 광장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
.너.
말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소통은 혼자 할 수 없다. 소통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며 화자와 청자가 공히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때 가능하다. p.41, 1부 언위심성 : 5 관계
소통이 단절된 시대. 단순히 거리두기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이르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사람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었고, 사람보다는 인공지능, 캐릭터에 열광한다. 심지어 그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고 소통하려고 한다. 당연히 그만큼 사람들은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소통의 핵심은 내용과 진심이다. 뛰어난 언변과 기술은 소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요하거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소음'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상대의 단점만을 발견하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내면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슬픈 일이다. 남을 칭찬할 줄 모르면서 칭찬만 받으려 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면서 존중만 받으려 하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만 받으려 하는 건, 얼마나 애처로운 일인가. p.50, 1부 언위심성 : 7 뒷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감히 현실에서는 꺼내지도 못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비상식적인, 몰상식한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쓸데없는 상황을 가정하며 논쟁을 벌이고 그 논쟁이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인터넷 악플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악플은 점점 교묘해져서, 단순 비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치 실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구체적으로 루머를 생성하고, 사진을 합성한다. 칭찬을 중간중간에 섞어 논리적인 의견인양 가장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이 '너'의 존재를 잊어버려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헤아리려는 시도를 얼마나 해보았을까. 한 번만 더 생각하면, 조금만 배려하면 바뀌었을 일을 '효율성'과 '개인주의'라는 명목 하에 숨어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되어도 사람과의 소통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사람들끼리만이 나눌 수 있는 에너지와 힘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와 삶.
첫 문장에 대한 두려움은 있는 힘을 다해 싸우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적당히 품고 지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글쓰기의 일부로 여기면서 말이다. p.99, 2부 본립도생 : 2 처음
읽는 내내 글쓰기와 삶이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에 대해 골똘히 고민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문장은 책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아직도 인상 깊게 읽었던 <이방인>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라는 문장이나, <인간실격>의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와 같은 문장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첫 문장을 잘 골라내고, 잘 쓰기 위해 작가들이 노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처음'하는 일을 무서워한다. 기왕이면 하던 것을 하고 싶고, 익숙한 것에 머물고 싶다. 그렇게 햄버거를 좋아하면서도 맥도날드에서는 불고기버거, 롯데리아에서는 새우버거, 맘스터치에서는 싸이버거, 버거킹에서는 쉬림프 버거만을 주문하거나, 독서, 글쓰기 등의 익숙한 취미만을 즐기는 것도 이런 성향에서 기인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항상 그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처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 속에 품고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그런 연습이 나에겐 필요하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어머니의 사랑을 닮았으면 좋겠다. 내 손끝에서 돋아나는 문장이 어둠을 가로질러 빛을 향해 날아가는 새가 되었으면 한다. 그 새들이 누군가의 삶을 밝은 쪽으로 안내하기를 바란다. p.230, 3부 두문정수 : 9 지향
나는 '고쳐쓰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소리 내어 읽어보며 어색한 문장을 고치고, 고칠 때마다 문장이 좋아진다고 확신한다. 물론 첫 문장이 가장 좋았던 예외의 경우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서툰 부분을 살피고 고쳐나갈 때마다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노력을 기울인 만큼 더 괜찮은 결과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글이나 책이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은 경험하기 전에는 믿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경험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윤태익, 김현태 작가의 <어린이를 위한 시크릿>이라는 책으로 독서에 재미를 붙였다. 다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10번은 넘게 읽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내용이 생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중학생 시절에는 이지성, 정회일 작가의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를 보고 독서에 대한 꿈을 키웠다. 1년에 100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현실로 만들어보자 다짐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시리즈를 읽고 책에 대한 흥미를 되찾았으며, 제목의 영감을 얻었다던 조지 오웰의 <1984>를 이어 읽고 고전문학에 매료되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할 엘로드의 <미라클 모닝>을 읽고 내 생활 습관이 아예 바뀌었으니, 책이 항상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이 정도의 글쓰기 실력으로는 책을 써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서히 그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렇게 계속해서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내 글들도 힘을 가질 것이라고 말이다. 이 글을 보면 누군가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히 누가 누구의 글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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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감히 누가 누구의 글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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