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히가시노 게이고) : 진실과 마주할 용기

Book 2021.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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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지은이), 최고은(옮긴이) | 출판 알에이치코리아(RHK) | 발매 2020.11.30


 

 

 

 

 

> 진실과 마주할 용기

스포일러 포함


.진실.

 

 모든 일이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는 법이지. 27장

 

  하나의 거짓말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거짓말이 필요로 한다. 거짓말은 한번 시작되면 끊임없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변변치 않은 만화가가 된 구기미야는 죽은 쓰쿠미의 노트를 펼쳐보고는 엄청난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제로원 대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목은 구기미야의 손에서 <환뇌 라비린스>라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고, 작품은 대박을 쳤다. 도둑질이었다.

 

  에이치는 이름 없는 마을의 꽤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졸업생들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에이치는 구기미야에게 동창회에서 쓰쿠미의 작문을 읽어도 되냐고 의견을 물었다. <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적힌 쓰쿠미의 작문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은 소망, 구기미야의 재능이 부럽다는 내용과 함께  <제로원 대전> 즉, <환뇌 라비린스> 초기 구상본이 담겨져 있었다. 에이치는 이것을 보고 쓰쿠미가 구기미야에게 부탁해 그의 꿈을 대신 이뤄준 감동적인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구기미야는 에이치가 진실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 이에 작문지를 없앨 의도로 에이치의 집에 방화를 저지르기로 마음 먹고, 변수가 발생해 에이치를 살해하고 만다.

 

 

 요컨대 낡은 집을 부수라는 거지. 그리고 새 집을 다시 지을지 둘이서 정하면 돼. 에필로그 

 

  남의 아이디어를 훔친 구기미야는 이를 진실로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거짓말을 했고 심지어는 본인을 속이기도 했다. 진실을 어렴풋이 알게된 에이치를,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살해하게 되고 또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 만약 구기미야에게 이때까지의 거짓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다못해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진실을 고하고 반성했다면 말이다. 진실을 마주하고 포기하는 용기는 누구에게든 꼭 필요해 보인다.


.민낯.

 

 "다 끝난 일을 계속 아쉬워한들 부질없는 짓이고, 이 마을에도 다른 좋은 곳이 많으니까요." 25장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람의 민낯이 속속들이 보인다. 구기미야는 쓰쿠미의 작품을 훔쳐 만화가로 대성했다. 가시와기는 초등학교 시절 구기미야를 괴롭혔으면서 그의 성공에 빌붙어 한몫을 챙기려고 발버둥 친다. 리리카는 구기미야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하여 명예를 채웠으며, 심지어는 유부남인 데키스키와 불륜을 저질렀다. 모모코의 남편인 료스케는 완벽주의를 핑계로 모모코에게 집안의 모든 일과 육아를 떠넘겼다. 게다가 경력 단절을 요구하고, 가정폭력을 행사했다. 에이치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들은 유족들에게마저 불친절했으며, 겐타는 전 여자 친구를 낙태시켰다.

 

 

 그래, 이름 없는 마을에도 자랑거리는 있었다. 25장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 수많은 일들은 사실 사회 민낯이나 다름없었다. 다들 사실을 감추고 드러내려 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이름 없는 마을의 일들이 마치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이면을 감추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

 

  나는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과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 섞여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하게 디자인된 책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신간 코너와 베스트셀러 코너를 꼭 훑곤 하는데, 두 코너에서 모두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신간을 쏟고 베스트셀러를 차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라플라스의 마녀, 용의자 X의 헌신 그리고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까지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바로 몰입감이었다. 나는 추리나 미스터리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추리 드라마의 경우 보통 16부작 이상인 경우가 많은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범인 찾기'에 나의 에너지를 쏟는 게 너무 버거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 같이 비교적 호흡이 짧은 이야기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단순히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구비되어 있고, 그의 이름이 가지는 명성이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의 소설을 손에 쥐면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읽어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보듯이, 계속 읽어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짧은 편이 아님에도 한숨에 읽어내릴 수 있었던 건 그의 문체와 이야기 구성이 주는 몰입감 덕분일 것이다.

 

  이번 책을 읽고 감탄을 한다던지, 너무 재미있어서 추천을 하고 싶다던지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기회가 된다면 <동급생>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한 문장

 

그래, 이름 없는 마을에도 자랑거리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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