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황정은) : 혁명 - 모두의 목소리에 고유한 색을
Book 2021. 2. 10.
디디의 우산
저자 황정은 | 출판 창비 | 발매 2019.01.20
책 소개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百의 그림자>, 소설집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등으로 넓고 탄탄한 독자층을 형성한 동시에 평단의 확고한 지지를 받으며 명실공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d'(발표 당시 제목 '웃는 남자')와 「문학3」 웹 연재시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인물과 서사는 다르지만 시대상과 주제의식을 공유하며 서로 공명하는 연작 성격의 중편 2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2014년 세월호참사와 2016~17년 촛불혁명이라는 사회적 격변을 배경에 두고 개인의 일상 속에서 '혁명'의 새로운 의미를 탐구한 작품들이다.
저자소개
황정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펴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아무도 아닌』,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 등을 썼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수상 : 2019년 만해문학상, 2017년 김유정문학상, 2015년 대산문학상, 2014년 이효석문학상, 2014년 현대문학상, 2014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2012년 신동엽문학상, 2010년 한국일보문학상
목차
007 d
149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319 모든 존재들에게, 우산을 / 강지희
345 작가의 말
346 수록작품 발표지면
❥ 혁명 - 모두의 목소리에 고유한 색을
.혁명.
혁명이란 무엇인가. 황정은은 그것이 번개처럼 크고 단절적인 절대적 힘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진공관 속의 빛과 소음을 발견하는 일이라 말한다. 어떤 사소한 사물조차 "세상에 그거 한대뿐"이라는 유일성을 담고 있음을 인지한 자라면, 그 안에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뜨거움은 시대가 주는 환멸과 낙담으로 벗어나는 길을 열어낸다. p.326,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우산을 /강지희
황정은 작가는 『디디의 우산』을 통해 '혁명'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혁명은 완수되었는가? 바라던 세상이 찾아왔는가?
혁명은 번개 같은 것이 아니다. d와 dd가 바라보았던 그을린 열기 같은 것이다. d가 발견했던 뜨거운 유리막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하찮게 바라보고, 충돌 한 번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는 그런 것들에서 혁명은 시작된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여기서 날 수밖에, 여기서 마찰하는 수밖에 없어. 탈조. 서수경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여기를 나가서, 어디로 가겠다는 걸까? p.292,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혁명'이라는 단어 자체에 집중하면서 무언가를 몰아내고, 깨부수긴 했는데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불충분해 보인다. 그 사이에 진공관의 열은 식고, 사람들은 흩어진다. 어떻게 하면 그 열기를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왜 함께 오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너무 하찮기 때문이라고. 나도 dd도 그리고 당신도. 우리가 너무 하찮아서, 충돌 한번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p.139, d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 p.145, d
혁명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혁명이 완수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사람들은 번개와 같은 힘 있는 것들에 경외심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번개가 아니다. 번개가 그을린 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진공관 속 열기가 식지 않도록 계속해서 신경 쓰고 투쟁해야 한다. 누군가가 우습게 보는 그것이 결코 하찮지 않다고, 우리는 뜨겁다고 외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하찮고, 충돌 한 번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는 존재들이 모여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야 한다.
.혐오.
그는 권위 없음을 혐오한다. 그는 힘없음을 혐오한다. 그는 약함을 혐오한다. p.221,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누군가의 '권위 없음'을 비난할 때 그에게는 그것을 하는 '권위'가 있으므로 그는 힘없을 힘껏 혐오한다…… p.222,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혐오하는 행위 자체에서 '권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 권력에 심취해 약자를 더 혐오하고, 혐오하고, 혐오한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특별한 문제로도 인식되지 않을 만큼 혐오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사회라면 그 문화가 이어받아온 사유의 메커니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336,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우산을 /강지희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이렇게 혐오가 가득하게 되었을까. 특정 사건들을 성별 싸움으로 바꾸어 끝없이 논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부터 존재했던 여성혐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논외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가난을 멸시하며 가진 자를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고, 겉모습만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급을 매겨버리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런 것이 개인의 의견 차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면 그것에서 시작한 수많은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고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른바 '가시성'을 잃는다.
개인주의라는 명목하에 벌어져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개인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자유가 누군가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이 당연한 것을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이런 것들을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약자.
상식은 강자의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 상식은 약함에 대한 혐오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혐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대신 증오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반복되어온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식'이라는 말은 혐오의 작동방식을 순식간에 비가시적으로 만들어버린다. p.336,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우산을 /강지희
최근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세계가, 사회가 얼마나 약자들에게 공평하지 않은가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기술을 발전하고 세상은 바뀌는데, 그 기술을 누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이다.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목소리의 색이 정해져 있고,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삶의 끝에서 소리를 질러도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다.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 한편을 완성하고 싶다. 언제고 쓴다면, 그것의 제목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하면 어떨까. 그것을 쓴다면 그 이야기는 언제고 반드시 죽어야 할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소용되지 않아, 더는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로. 그것은 가능할까. p.316,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누구도 죽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져서 '묵자'라는 단어처럼 상식의 범위가 되어서, '더는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세상은 도래할 수 있을까? 날마다 누군가 죽어 나가고, 다치는 이 사회에서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책에서 '묵자'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묵자는 말하자면 '점자'의 반대말이다. 만약 일상에서 '점자'를 모르는 사람을 마주친다면, 사람들은 상식이 없다며 무식한 취급을 할 것이다. 하지만 묵자는 어떤가. '묵자'라는 단어를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의 말처럼 상식은 가진 자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상식의 기준을 강자에서 모든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꿈꾸는 이 소설들이 그의 손에서 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므로, 혁명이 이루어진 날은 오늘이 아닐 것이다.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치부되어온 문제들과 지워져온 존재들을 위해 무한히 많은 혁명들이 계속되어야 하고, 정말 혁명이 도래하는 그날에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대신에 모두가 말하게 될 것이다. p.342,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우산 /강지희
혁명은 멈추거나 끝날 수 없다. 내가 보이지 않는 혹은 보지 않으려고 했던 사회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치열한 혁명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는 이미 죽어버린 이들을 위해서,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서… 끝없이 움직인다.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정말 혁명이 도래하게 된다면,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사라지고, '묵자'와 '점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모두가 자신만의 색으로 목소리를 내며 받아들여지는 그런 사회가 올 것이다. 나도 그런 세상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디디의 우산은 나와 타인의 삶을 넘어 지금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의문점, 혁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읽는 내내 작가의 표현력과 문장에 감탄하며 일종의 스탕달 신드롬을 느꼈다. 재밌었고, 흥미진진했고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가 이렇게 괴로운 소설은 처음이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꼭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전부 필사하고, 서평을 쓴다(독후감이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평이 쓰기 어려울 때는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많은 인터뷰나 작품 설명을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많은 글을 읽어도 한 줄조차 쓰기 어려웠다. 이 책을 2월 3일에 다 읽었는데, 꼬박 일주일을 고민해서야 겨우 키워드 세 개를 골라낼 수 있었다(보통은 읽는 중간에, 길어도 읽은 다음 날에 어렵지 않게 키워드를 골라낸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과 고민이 남아있다. 부족한 글 실력으로 차마 본문에 담아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여기에라도 짧게 적는다.
각각의 두개골은 각각의 패턴으로 맞물려 있지. 열명의 사람이 있다면 열가지, 백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가지 패턴으로. 백만이라면 백만의 패턴으로. p.35, d
내가 잊히지 않는 『디디의 우산』 속 장면이 몇 가지가 있다. 바로 '두개골'과 '니체'에 관련된 부분이다. 전자는 <d>에서 d가 dd를 떠올리며 하는 생각이고, 후자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를 언급하며 등장하는 부분인데 나는 자꾸 이 두 장면이 겹쳐 보였다.
두개골은 사람마다 다른 형태를 보인다. 그것이 고유한 특성이고 패턴이다. 그리고 니체는 두개골 모양의 자판을 가진 몰링 한센 타자기를 두드리며 글을 썼다. 두개골이라는 키워드로 묶인 전혀 다른 이 두 개의 장면이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는 문장과 합세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혁명'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고민하게 했다.
내가 만약 니체가 사용했던 타자기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고 해서, 내가 니체처럼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니체와 나의 두개골 모양이 다른 것처럼, 나와 니체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인간은 같은 툴을 쥐고서도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르게 말하면, "인간은 다른 툴을 쥐고서도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의문점을 해결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만 같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도구를 활용해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여담
1. 나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는 구조의 글들을 좋아한다. 《디디의 우산》 중 「d」에서 '이 방은 본래 이러했다'는 말이나,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는 말.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서 '그만하자'는 문장이나, '이야기 한편을 완성할 수 있을까'라는 말,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설명한다'는 문장이 그런 예시이다.
2. 연작 소설답게 두 작품을 아우르는 장면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두개골'이라는 단어. 경찰 버스로 고립된 공간 안에서 d는 멈추고, 서수경과 김소영은 '더 가볼까' 고민한다. 여소녀가 d에게 아는 척을 하는 장면과 김소영이 서수경에게 아는 척을 하며 '나 너 알아'하는 장면. 이것들은 단순히 같은 세계와 공간을 넘어 작품들이 긴밀하게 이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3.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 '나'의 이름은 김소영인데, (내 기억이 맞다면) 딱 한 번 언급되었다.
4. 황정은 작가의 특징인지는 다른 작품들을 조금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모든 주인공들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좋았다. 수경이 아닌 서수경. 소리가 아닌 김소리.
책 속 한 문장
내가 어른이야?
누가 내게 그 기회를 줬어?
❣︎ 작가의 다른 책 살펴보기 전체보기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리처드 왓슨) : 여전히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 (0) | 2021.02.15 |
---|---|
이토록 사랑스러운 삶과 연애하기(백가희) : 나는 사랑주의자였다 (0) | 2021.02.11 |
이기주의 인문학 산책(이기주) : 삶의 온기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0) | 2021.02.05 |
본능 독서(이태화) : 새싹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0) | 2021.02.02 |
시선으로부터,(정세랑) : 당신으로부터 뻗어나갈 이야기 (0) | 2021.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