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 돔이 없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Book 2021. 5. 6.
지구 끝의 온실
저자 김초엽 | 출판 밀리 오리지널 | 발매 2020.10.01
책 소개
2020년대에 가장 주목받을 작가로 손꼽히는 김초엽이 문단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7년, 이례적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의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면서부터다. 곧 김초엽은 신예라는 수식어가 어색할 만큼, SF 장르적 상상력에 페미니즘, 윤리학, 장애학 등 다채로운 주제를 덧대는 놀라운 작품들을 보여주며 독자와 문단에게서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2019년에 펴낸 첫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무려 14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비평가들은 섬세하게 축조된 소설 세계를 지닌 수록작들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2020년 10월, 김초엽은 첫 장편소설을 펴내며 자신의 향한 기대와 사랑에 또 하나의 화답을 보내왔다.
단편소설에서 작가 특유의 장점으로 손꼽히던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자유로운 상상력은 장편소설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김초엽의 첫 번째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더스트’로 인해 한 차례의 대멸종이 일어난 먼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더스트란 작품 내에서 유기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먼지를 일컫는 말로, 이러한 더스트에 노출된 유기체는 동물, 식물, 인간 할 것 없이 모두 죽음에 이른다. 인간들은 도시 위에 커다란 돔을 씌운 ‘돔 시티’를 만들어 더스트를 막으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방책일 뿐이며, 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도시 바깥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살육해야 한다는 잔혹한 전제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작가는 그렇듯 끔찍한 디스토피아에서 한 걸음 떨어져, 더스트가 종식되고 문명이 재건된 이후의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잔잔한 현재에서부터 참혹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대멸종이 일어났던 시대의 또 다른 진실을 하나둘 밝혀간다.
저자소개
김초엽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사이보그가 되다』(공저) 등을 출간했다.
수상 : 2019년 오늘의작가상,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목차
009 모스바나
085 더스트 폴
155 프림 빌리지
229 구원자들
309 지구 끝의 온실
❥ 돔이 없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돔.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차별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돔에 의한 차별이다. 돔은 외부로부터 안전한 곳이다. 모두가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 명백히 차별을 낳고 있다. 두 번째는 내성종에 의한 차별이다. 책에 등장하는 나오미와 아마라는 내성종이라 불린다. 내성종들은 생체 탐지기를 통해 발각되면, 죽거나 실험체로 이용된다. 돔 바깥의 내성종인 두 사람은 수많은 차별과 위험을 겪어내면서 평화로운 한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 마을도 파멸을 맞게 된다.
결국 이 마을의 삶조차 다른 멸망의 잔여물 위에 세워진 것이었고, 숲 바깥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의 삶 역시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었다. p.285, 4부 구원자들
책을 읽으면서 '돔'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물리적으로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말이다. 넓게는 사회적으로, 좁게는 개인적으로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돔을 세우며 살아가고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숲속 마을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마을이 연상된다. 차별받는 사람들만이 모여있는 공간. 돔과 마을의 분리. 나는 이제 이 두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감히 분류할 수 없으며 크고 작은 돔을 세우던 개개인의 기준이, 사회의 기준이 바뀌어야 함을 안다.
.희망.
희망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상승할 때는 의미가 있지만, 다 같이 처박히고 있을 때는, 그저 마음의 낭비인 것이다. p.189, 2부 더스트 폴
생존을 위한 나오미와 아마라의 싸움을 보면서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이기심과 희망, 절망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성종, 돔. 이것들이 분리되는 출발점에는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며, 우리가 더 나은 위치에 있다'는 오만함. 자신들이 기득권이라고 믿는 그들의 카르텔이 견고해질수록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절망하게 된다. 마치 돔 바깥의 사람들이 점점 희망을 잃어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요. 아무도 믿지 않아도 또 한 번 시도해볼 때가 되었네요. p.83, 모스바나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책의 말처럼 아무리 믿지 않아도 또 한 번, 다시 한번 계속해서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은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목소리를 실어야 할 쪽은 오만함과 이기심이 아니라 희망 쪽이라고.
.차별.
모스바나는 어디서부터 자연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인간의 것인지, 혹은 기계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성체였다. p.321, 5부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작가의 글은 '차별'을 주축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소외와 차별을 다양한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려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단편들과 더불어 김원영 작가와 함께 집필한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어본다면 그녀가 어떤 식으로 차별을 그려내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SF라는 장르는 그러한 김초엽 작가의 시선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돔이 없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목소리를 내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담
오랜만에 북리뷰를 쓴다. 그 사이에는 아예 다른 장르의 글을 쓰다보니까 문체가 미묘하게 바뀐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글이 마음에 안들어서 업로드 직전까지 고민의 고민을 하다가 올린다. 계속 쓰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책 속 한 문장
인류의 구원자가 되라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죠.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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