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임솔아) : 방황, 그 작은 단어가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Book 2022. 2. 10.
최선의 삶
저자 임솔아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5.07.17
책 소개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자 임솔아는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바로 그 시인이다. 이미 시인으로서 인지도를 쌓고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던 임솔아가 다시 신인으로 되돌아가는 모험을 감행하면서까지 써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오직 소설이라는 형식으로만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던 이 이야기는 열여섯 살 이후로 끈질기게 작가를 찾아왔던 악몽에 관한 것이다.
가족과 학교에 대한 불신, 친구를 향한 배신감을 빨아들이며 성장한 인물이 친구를 찾아가 살해하려는 꿈. 물론 이런 서사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선의 삶'은 가출 청소년이자 학교폭력 피해자인 한 인물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개성적인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작품이 ‘낯선’ 성장소설로 읽히는 까닭은 임솔아가 보여주는 감정의 절제에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앞에서 혼란스럽고 두려울 것이 분명할 내면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차라리 그는 제가 처한 상황을 특유의 간명한 문체로 정의한 뒤, 그저 더 나아지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일에 몰두한다. 형용사나 부사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움직이는, 동사의 세계. 그 속의 주인공을 보는 독자에게 문득 섬뜩함이 엄습하게 되는데, 우리는 삶에 서툰 영혼의 성숙을 그리며 ‘미숙했던 그 시절’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보통의 성장소설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의 삶'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연민할 틈을 주지 않는다. 최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과정을 덤덤하게 쓸 뿐이다. 돌이켜보면 작가가 등단할 당시 받았던 “서늘하도록 선명하고 넓으며, 위태로우면서도 태연하다”는 평이 임솔아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정확히 짚어낸 셈이다.
저자소개
임솔아 (지은이)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문을,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장편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등이 있다.
❥ 방황, 그 작은 단어가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선택.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p.174, 스노볼
유독 날 것의 향이 나는 작품을 좋아한다. SF, 판타지 장르의 외서들보다 현실에 맞닿은 한국 소설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선의 삶》은 가출 청소년이자 학교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색다른 점은 여느 성장소설처럼 '극복'을 성장의 동일어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상처를 안은 채 나아갈 뿐이다.
인간에게는 많은 길이 주어져 있지만,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생, 부모, 가정형편은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되고, 그 이후 주어지는 선택지 또한 제한적이다. 우연히 행운을 비껴간 누군가는 필연적 불행 앞에 놓여 절망이 일상이 된다. 소영, 강이, 아람. 이 세 사람이 마주하는 일련의 사건에서 누구는 최악만 면하고, 누구는 최선을 택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어떤 이에게는 뉴스에서나 접할 끔찍한 일이, 누군가의 일상이기도 하다. 어린 날의 장난이라고 포장되는 폭력 속에 누군가는 삶이 묶여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불행과 행운의 크기를 떠나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이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악몽이 내 발목을 잡는 것인지, 내가 악몽을 놓지 못하는 것인지 고민할 틈도 없이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방황.
어디선가 가정형편의 차이는 실패의 용인에서 판가름 난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스노볼의 유리가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 될지, 끝없이 내리는 눈보라에도 빠져나갈 수 없는 벽이 될지도 마찬가지의 문제다.
소영을 보며 아람과 강이가 느꼈던 감정은 허탈감이자 일종의 배신감이 아니었을까. 《최선의 삶》의 소영을 보고 있으면 영화 《박화영》의 은미정이 떠오른다. 두 사람은 과거에서 혼자만 떨어져 나왔다는 점이 닮았다. 유독 이들의 10대와 20대는 이어지는 게 아니라 독립된 두 개의 삶으로 보인다. 이들이 10대에서 20대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생의 흐름을 비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스노볼의 유리 때문에 그렇다. 그들의 10대와 20대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그 어색한 간극을 방황이라는 단어로 메꾸면서.
.최선의 삶.
왜인지 나는 10대의 이야기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마 내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한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큰 이유는 나 역시도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방황, 사춘기 따위의 작은 단어가 담아낼 수 없는 크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작품을 만나면 어떤 단어를 붙여 설명할지 계속 고민하다 결국 책의 제목을 한 번 더 읽는 것으로 생각을 갈무리한다. 책의 제목과 문장들을 손으로 쓸며 명확한 질문 하나 없음에도 끝없이 되묻는다. 생애와 최선의 선택에 대해서 또, 가슴 아린 과거와 악몽에 대해서. 그 무엇하나 선명하지 않음에도 책의 문장만은 선명하다.
책 속 한 문장
내가 악몽에 시달려온 것이 아니라
악몽이 나의 질문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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