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결혼(정보라) :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기에 둥글 수 있다

Book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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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보통의 결혼

저자 정보라 | 출판 밀리 오리지널 | 발매 2021.06.01


 

 

 

책 소개

밀리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 그 열일곱 번째 책
정보라 『아주 보통의 결혼』
2021년 7월 《저주토끼》의 영국 출간을 앞둔 정보라 작가의 4년 만의 신작 소설집!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그녀들을 기다리는, 아주 이상한 존재들의 멸망 이야기!

 

 

 

저자소개

정보라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예일대학교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과 SF에 대해 강의하며 러시아와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권 문학작품들을 번역하고 데모를 열심히 하고 있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들,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기에 둥글 수 있다


.상처.

 

 SF 소설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현실과 첨단 기술이 뒤섞여 그려낸 미래는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해 되묻는 좋은 기회가 되곤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아주 보통의 결혼》은 SF 속의 '보통의 삶'을 이야기하며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나갈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인간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녀를 만나다」에서는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의 변화에 의해 많은 사람이 다치고 무너져내린다. 「아주 보통의 결혼」의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배신감과 혼란에 주저앉는다. 「Maria, Gratia Plene」에서는 가정폭력과 비극적인 운명이 만들어낸 상처가 한 여성의 삶을 옥죈다. 이러한 상처를 다루어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무언가에 의존하거나, 혼신의 힘을 다해 회피하거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것이 그 예이다. 자아를 잃는 수준의 의존은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회피는 무기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일하게 희망과 맞닿은 방안은 투쟁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투쟁의 향기를 강하게 뿜어내고 있다.

 


.투쟁.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간의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너무나 가변적이어서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온몸에 잔뜩 생채기를 남기기도 하고, 안심하고 마음 놓은 순간 발목을 잡아 놓아주지 않곤 한다. 사람들은 이런 가혹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투쟁한다. 딱지도 지지 않은 상처가 가득한 몸을 이끌고, 제 발목을 잡아 놓지 않는 것들로부터 발버둥 치며 한 걸음 내딛기 위해 투쟁한다.

 

 

 책 속에서도 그러한 투쟁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녀를 만나다」 속 주인공은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너의 유토피아」 속 주인공은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와 힘을 합쳐 싸우면서 유토피아를 꿈꾼다. 「씨앗」의 인물들은 자연을 장악하려는 이들에 대항하면서 '하나'의 힘을 믿는다. 척박한 땅 속에서도 작은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없이 투쟁하는 것이다.

 

 

 책 속 인물들은 반대되는 집단에 의해 상처받는다. 그들 중에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투쟁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기계든 인간이든, 강자든 약자든 같은 지구라는 공동체, 더 나아가서는 우주라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존재라는 것을 종종 잊는 듯하다.

 


.공생.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이 책의 단편들은 '공생'이라는 키워드로 묶인다. 작가는 완전히 다른 두 존재들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들이 모두 동등한 위치에 놓였음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이 동등한 공생의 존재들이 크고 작은 일로 부딪힐 때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끝에 가서는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굴복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107쪽, 「여행의 끝」)"는 구절이 너무나 와닿기 때문이다.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는 그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진심과 좋아하는 노래를 기억해주고 따뜻한 안부를 건네는 용기, 가진 것이 없어도, 손을 잡아 온기를 나누는 태도와 같은 것들이 우리를 숨 쉬게 한다고 말했다. 해답이 너무나 단순하고 작은 것이기에 이 조그마한 것 하나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이 더욱더 깜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어둠 속에서는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끌어내리려  하는 모습이 선명해진다.

 

 

 사람들은 모두 정상에 서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입장에선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주는 어떻겠는가. 우리는 이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들이다. 그 존재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우리 모두 '보통'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손을 뻗어 서로를 둥글게 감싸 안으며 지구의 모양새를 닮아가고 싶다. 낫지 못한 몸을 이끌고 투쟁하는 보통의 가운데에 함께 하고 싶다. 사필시종에 어긋나는 투쟁의 이치가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면 마음속에 지구를 그리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되뇐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기에 비로소 지구는 둥글 수 있다고.

 


 


 

책 속 한 문장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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