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준) : 계절을 건너 나와 당신을 돌보는 사람

Book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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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 박준 | 출판 문학과지성사 | 발매 2018.12.13


 

 

 

> 계절을 건너 나와 당신을 돌보는 사람


..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간다. 과거 나의 행동과 말 혹은, 타자의 흔적이 현재로 불쑥 찾아와 내 일상을 흔든다. 그것은 비로소 빛이 되어 내 삶을 밝혀내는 힘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들이 어떻게 서로 빚을 지고 빛을 보는지에 대해 노래한다.

 

  나는 정말 과거에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간다. 여느 프로그램에서 흔히 묻는 '몇 년 전 자신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따위의 질문에 나는 감히 대답할 수 없다. 여전히 과거에 조언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스치듯 뱉은 말이 나를 구제하거나, 내가 적어두었던 일기, 잘 정리해두었던 무언가가 내 손을 따스하게 잡아줄 때가 있다. 그러니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게 미래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도 나는 지금처럼 내 과거에 끝없이 질문할 것이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내가 바르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니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네기 위해 애쓸 것이다.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79쪽, 「숲」일부) 말들을 더 많이 보내두기 위해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

 


.사랑.

 

앞에서 그를 "미래를 내다보는 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적었는데, 그러니까 그의 사랑도 그렇다는 것이다. p.109, 발문 : 조금 먼저 사는 사람 · 신형철

 

  현재를 살아가는 시인은 미래의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시간을 쓰는 게 시인의 사랑인 셈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보았는가. 시간을 내어 미래의 당신에게 건넬 말들을 골라내어 본 적이 있는가. 시인의 사랑이 묻어나는 구절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자문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에게 모든 집중을 쏟느라 주변을 잘 돌보지 못했던 것 같다. 준 만큼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 지레 겁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당신에게 마음을 쏟는 일도 결국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 중 하나라는 걸. 시간을 내어 마음 다해 준비하는 그 과정 전부가 사랑이니 괜찮다는 걸 말이다.

 


.계절.

 

  이 책을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로 행운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로 구성된 이 시집은 한 해를 훑으며 현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미 지나온 계절들을 뒤돌아 괜히 살펴보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들의 나를 떠올려보게 한다. 지나온 계절들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 찾아올 계절들을 준비할 수는 있다.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이 되었지만, 현재와 미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멈추어버린 과거의 시간에 빚내어 조금 더 밝은 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같지만 조금씩 다른 계절들을 헤치며 살아갈 것이다. 매 계절, 매시간, 과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단단해진 내가, 머지않은 미래에서는 내 빛을 조금 떼어 타인의 평안을 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계절을 건너 이름 모를 누군가를, 그 무엇보다 '나'와 '당신'을 돌보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여담

이 책은 2021년 셀프 생일선물로 구매한 시집이자, 내 인생에 끝까지 다 읽은 첫시집이기도 하다. 매년 생일마다 시집 한권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 한 문장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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