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준) : 계절을 건너 나와 당신을 돌보는 사람

Book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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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 박준 | 출판 문학과지성사 | 발매 2018.12.13


 

 

 

책 소개

문학과지성 시인선 519권. 단 한 권의 시집과 단 한 권의 산문집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시인 박준의 두번째 시집. 2012년 첫 시집 이후 6년 만의 신작이다. 지난 6년을 흘러 이곳에 닿은 박준의 시들을 독자들보다 '조금 먼저' 읽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작정作情'어린 발문이 더해져 든든하다.

시인은 말한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다고. '보고 싶다'는 바람의 말도, '보았다'는 회상의 언어도 아니다. '볼 수도 있겠다'는 미래를 지시하는 언어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함께할 수도 있는 시간을 짚어낸다. 함께 장마를 보기까지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을 담담한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시인의 서정성과 섬세한 언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묵묵히 차오르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지난 시집의 발문을 쓴 시인 허수경은 "이건 값싼 희망이 아니라고 당신이 믿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에 의지해 다시 한번 박준이 보내는 답서에 담긴 아름다움을, 다시 다가올 우리의 시작을 믿어본다.

 

 

 

저자소개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늘 개와 함께 살고 있다.

 

 

 

 

 

 

 

❥ 계절을 건너 나와 당신을 돌보는 사람


..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간다. 과거 나의 행동과 말 혹은, 타자의 흔적이 현재로 불쑥 찾아와 내 일상을 흔든다. 그것은 비로소 빛이 되어 내 삶을 밝혀내는 힘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준 시인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들이 어떻게 서로 빚을 지고 빛을 보는지에 대해 노래한다.

 

 

 나는 정말 과거에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간다. 여느 프로그램에서 흔히 묻는 '몇 년 전 자신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따위의 질문에 나는 감히 대답할 수 없다. 여전히 과거에 조언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스치듯 뱉은 말이 나를 구제하거나, 내가 적어두었던 일기, 잘 정리해두었던 무언가가 내 손을 따스하게 잡아줄 때가 있다. 그러니 현재를 잘 살아내는 게 미래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도 나는 지금처럼 내 과거에 끝없이 질문할 것이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내가 바르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니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네기 위해 애쓸 것이다.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79쪽, 「숲」일부) 말들을 더 많이 보내두기 위해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

 


.사랑.

 

앞에서 그를 "미래를 내다보는 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적었는데, 그러니까 그의 사랑도 그렇다는 것이다. p.109, 발문 : 조금 먼저 사는 사람 · 신형철

 

 

 현재를 살아가는 시인은 미래의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시간을 쓰는 게 시인의 사랑인 셈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보았는가. 시간을 내어 미래의 당신에게 건넬 말들을 골라내어 본 적이 있는가. 시인의 사랑이 묻어나는 구절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자문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에게 모든 집중을 쏟느라 주변을 잘 돌보지 못했던 것 같다. 준 만큼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 지레 겁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당신에게 마음을 쏟는 일도 결국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 중 하나라는 걸. 시간을 내어 마음 다해 준비하는 그 과정 전부가 사랑이니 괜찮다는 걸 말이다.

 


.계절.

 

 이 책을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로 행운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로 구성된 이 시집은 한 해를 훑으며 현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미 지나온 계절들을 뒤돌아 괜히 살펴보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들의 나를 떠올려보게 한다. 지나온 계절들은 내가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 찾아올 계절들을 준비할 수는 있다.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이 되었지만, 현재와 미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멈추어버린 과거의 시간에 빚내어 조금 더 밝은 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같지만 조금씩 다른 계절들을 헤치며 살아갈 것이다. 매 계절, 매시간, 과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단단해진 내가, 머지않은 미래에서는 내 빛을 조금 떼어 타인의 평안을 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계절을 건너 이름 모를 누군가를, 그 무엇보다 '나'와 '당신'을 돌보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여담

이 책은 2021년 셀프 생일선물로 구매한 시집이자, 내 인생에 끝까지 다 읽은 첫시집이기도 하다. 매년 생일마다 시집 한권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 한 문장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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