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카롤린 엠케) : 혐오와 증오의 안개를 걷어내는 '우리'
Book 2021. 8. 19.
혐오사회
저자 카롤린 엠케(지은이), 정지인(옮긴이) | 출판 다산초당(다산북스) | 발매 2017.07.18
원제: Gegen den Hass(2016)
책 소개
저자 카롤린 엠케는 오늘날의 혐오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를 멸시하고 적대하는 행위에서, 또 그러한 행위를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태도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공모되는 것이다. 혐오로 인해 사회적 긴장이 계속 높아지면, 언제든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적 광기와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혐오와 증오의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한다. 동시에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더 이상 혐오와 증오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욕과 폭력에 맞서는 일을 피해자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나’와 다른 목소리를 듣고,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혐오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나아가 불평등과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카롤린 엠케 (Carolin Emcke) (지은이)
독일의 저널리스트, 작가. 런던대학교와 프랑크푸르트대학교,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와 정치, 철학을 공부했다.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 분쟁지역을 다니며 저널리스트로 활약했고,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예일대학교에서 정치이론을 강의했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으
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여성이자 성소수자로서 전쟁과 사회적 폭력, 혐오 문제의 구조를 파헤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지인 (옮긴이)
전문 번역가.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우울할 땐 뇌과학』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공부의 고전』 『혐오사회』 『무신론자의 시대』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어려서부터 유일한 ‘장래 희망’이 번역하는 사람이었고, 그 생각대로 번역만 하며 살고 있다. 부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공부했다.
❥ 혐오와 증오의 안개를 걷어내는 '우리'
.혐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혐오가 자리 잡고 있다.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어린이 혐오, 노인 혐오, 외국인 혐오 등 나열하려면 끝도 없을 혐오들이 팽배하다. 이러한 혐오는 하루아침에 개인적으로 생겨난 감정이 아니다. 각각의 혐오는 "자체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이 반드시 선행한다."(11쪽)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는 혐오의 역사와 체제를 분석하며 우리가 갖추어야 할 삶의 태도를 모색한다. 혐오는 왜 발생하는 것이며,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혐오와 증오는 사람들이 가진 특성으로 공동체를 나누고, 그 공동체 간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발생한다.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어른과 아이, 내국인과 외국인 등이 예시가 될 수 있다. 혐오를 만들고 우열을 가르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그에 못지않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를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학력자가 저학력자를 혐오할 때, 자신은 괜찮은 학력을 가졌다며 그 혐오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동 혐오가 만연할 때, 자신은 아이를 키우지 않음으로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타국인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멸시받을 때도, '외국인이 무서운 건 맞다'며 혐오 행위자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이들은 혐오자들에게 힘을 싣는 동시에 책임은 지지 않는 굉장히 이기적인 형태의 혐오를 낳는다.
.약자.
코로나 전염병 사태 이후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고민할 여지도 없이 혐오와 온갖 위험에 노출된 약자들이다. 특히 나는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치원 등원을 할 수 없어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단체 생활을 하는 등의 기본 생활양식들을 배울 수 없게 되었다. 종일 뛰어놀아도 모자랄 시기에 전자기기에 갇힌 채 하루를 보낸다. 이는 소아 비만과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을 만나도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입 모양과 표정을 읽지 못해 언어 발달과 사회성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확진자가 2,000명대를 웃도는 지금 현실을 보라. 이기적인 어른들이 여행과 휴가를 핑계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전염병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던 이들도 억울한 감정을 느끼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처럼 소위 '강자'들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사회적 분란을 낳고 개인 이기주의를 끝없이 부추긴다. 전염병 사태가 낳은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이기주의가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기주의가 확산하는 방식은 혐오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혐오가 낳은 사회적 위기 상황은 혐오를 선명하게 재생산해낸다. '나만 혐오 당하는 것'이 억울해, 다른 혐오의 대상을 모색한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기어코 찾아내 그들에게 화풀이하는 식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모호한 집단을 증오하며 자신이 받은 혐오를 지우기 위해 애쓴다. 인종과 성별, 성 정체성, 경제적 조건 등 갖가지 이유와 결합한 혐오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그러다 결국 맨 밑바닥에 닿은 혐오는 서로를 향한다. 집단 내의 균열로 번지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약자를 지키기 위한 명목상으로 또 다른 약자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우리.
성별, 인종, 성 정체성, 종교 등 개인이 타고난 특성과 성질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려울까? 저 중 그 무엇도 혐오와 증오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동등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짧지만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깨달음이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능력주의 윤리에 갇혀 자신을 승자라 칭하고 패자들을 굴욕과 분노로 몰아가는 이들이 존재하며¹, 장애인들은 언제나 돌봄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혐오의 인식이 몸에 밴 사람들도 존재한다.²
개인주의는 심해지는데 집단 간의 간극은 넓어진다는 사실이 절망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저자처럼 계속해서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끝없이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쌓이고 쌓인다면, 혐오와 증오의 벽이 허물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은 '개인'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고 '우리'라는 더 큰 세상으로 발을 뻗어야 할 차례다. "혼자서 '우리'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추상적이고 너무나 이상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이 방안 외에는 선명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들을 막막하게, 때로는 포기해버리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증오에 저항하는 것, '우리' 안에 한데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용기 있고 건설적이며 온화한 형태의 권력일 것이다."(250쪽) 혐오를 장사처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건강한 논의를 통해, 또 우리의 행동을 통해 혐오와 증오를 조금이나마 걷어내야 한다.
출처
1. 마이크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함규진, 와이즈베리, 2020, 52쪽
2. 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2021), 291쪽
책 속 한 문장
미움받는 존재는 모호하다.
정확한 것은
온전히 미워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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