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이금이) :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의 비상
Book 2021. 8. 14.
유진과 유진
저자 이금이 | 출판 푸른책들 | 발매 2004.06.21
책 소개
유치원 시절에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큰유진과 작은유진은 중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이 된다. 큰유진은 유치원 동창인 작은유진에게 반갑게 아는 체를 하지만, 작은유진은 큰유진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은 큰유진과 같은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다고 말한다.
큰유진과 작은유진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전한다. 성추행을 소재로 다루었지만 어둡다는 느낌보다는 발랄한 여중생의 일상이 펼쳐져 오히려 경쾌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것은, 덜렁거리는 큰유진의 낙천적인 성격 탓이기도 하다. 큰유진은 성추행을 당했지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따뜻하게 감싸준 엄마와 아빠 덕에 별다른 무리없이 상처를 극복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인 작은유진에게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성추행 사건 후, 작은유진은 강제로 기억을 봉합당하다 큰유진을 만나고 나서 그 기억을 되살린 후,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사건을 덮어 두고 냉정하게 대한 가족들에게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작은유진이는 마음 속에서 꽁꽁 숨겨놓았던 어두운 상처를 기억하게 되면서, 학교 성적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부모 몰래 담배도 피우고, 학원에 가는 대신 춤을 배우러 가는 등, 나름의 일탈을 시도한다. 큰유진과 소라와 함께 집에서 탈출한 작은유진은 자기의 내면을 고요히 응시할 용기를 얻게 된다.
저자소개
이금이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1962년 충북 청원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유년기부터 이야기꾼 할머니와 라디오 연속극, 만화책 등과 함께하며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세계 문학 전집을 섭렵하듯 읽으며 작가 되기를 꿈꿨다. “내가 어린이문학을 선택한 게 아니라 어린이문학이 나를 선택했다.”라고 말할 만큼 아이들의 이야기를 쓸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작가는, 우리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모색기였던 1980년대에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으로 새벗문학상에 당선하면서(1984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의 비상
.보호.
상처를 다루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연스레 아물게 두기도 하고, 꼼꼼히 연고를 바르기도 한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상처를 다루어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진물이 터지고 곪기도 하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지 못해 더 다치기도 한다. 《유진과 유진》은 같은 아픔을 겪은 후, 치유의 방법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진 두 명의 '유진'에 관한 이야기다.
책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주인공은 모두 유치원 원장이 저지른 성범죄의 피해자이다. 단순히 글일 뿐인데도 이들의 고통이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이유는, 여전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발간한 '경기도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지원의 사각지대 및 과제' 이슈분석에 따르면 경기남부 13세 미만 1만 명당 성폭력 피해 아동 수는 2015년 1.5건에서 2019년 2.6건으로 1.1건 늘었다'고 한다.¹ 길거리, 유치원, 심지어는 집에서까지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른과 아이.
이 책은 어른들의 태도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작은유진'의 가족들은 아이를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다. 이름과 주체성은 지우고 '아이' 안에 한 사람을 가둔다.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고통의 회피를 강요하고, 아이를 살피지 않는다. 실질적인 해결책은커녕, 상처의 치유도 바랄 수가 없다. 또 다른 인물인 '건우'의 엄마는 인권 관련 직업의 종사자다. 두 명의 '유진'이 겪은 성범죄 사건에 대해 제 일처럼 책임을 갖고 행동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아들과 '큰유진'이 교제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큰유진'을 '그런 애'라고 칭하며 거리 둘 것을 요구한다.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태도 사이에 아이들만이 상처받고 눈물 흘린다.
어른은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본인이 낳아 기르고 있는 아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를 전 세계의 어른이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일상 속에서의 아동 인권이 자꾸만 바닥을 치는 이유는 이 당연한 의무를 온몸 다해 거부하며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어른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 이기적인 어른들 틈에서 더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이도 독립적인 개체이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비상.
사람은 누구나 보호받고, 보호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금이 작가는 '어떠한 상황 속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284쪽)고 말한다. 책 속의 '작은유진'이 끝없이 춤을 춘 것처럼, '소라'가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누리며 자신을 아껴주라고 말이다. 나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만끽하는 것이 앞선 질문에 대한 해답인 셈이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도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타인이 규정한 편견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아이들이 그것을 스스로 깨닫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아이가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어른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아이의 성장에는 지지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어른과의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277쪽)를 추스르며 자신만의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마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284쪽)이다. 하지만 그 일을 혼자 이루어내기에는 어렵다. 호의와 사랑을 경험하고, 다시 그것을 나누고, 그러한 사랑이 자기 자신에게까지 닿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사랑이 아이 자신에게까지 닿는 데 걸리는 시간, 이 시간을 줄이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몫을 해나가며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임에도 날아갈 힘을 주는 것. 추락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것. 사랑이 모여 만들어낸 따뜻한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제힘으로 날개를 펼쳐 자신이 원하는 세계로 비상한다.
출처
1.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 증가세… 맞춤형 지원정책 필요, 안경환, UPI뉴스, http://www.upinews.kr/newsView/upi202108120061
책 속 한 문장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임을 알고 있는 나는
온 마음으로 그가 날아오르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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