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 아마조네스는 어떻게 사람이 되었나
Book 2021. 7. 30.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저자 양귀자 | 출판 쓰다 | 발매 2019.04.20
초판출간 1992년
책 소개
작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1992년에 초판이 나오자마자 바로 페미니즘 논란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86년, <원미동 사람들>로 80년대 한국사회의 부박한 삶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90년 첫 번째 장편소설 <희망>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굽이치는 이야기에 담아 묵직한 감동을 안겨줬던 작가가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다.
젊은 여성이 인기 남자배우를 납치해서 감금하고 조종하는 이 소설은 발간 직후부터 독자와 평단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우선은 지금까지의 양귀자 소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파격적인 줄거리와 주인공 강민주의 거침없고 대담한 행보는 동시대 이웃들의 고달픈 삶을 연민과 세심함으로 감싸 안았던 양귀자 소설 세계에서는 놀라울 만큼 대단한 변신이었다.
저자소개
양귀자
195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고 원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에 <다시 시작하는 아침>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장한 후, 창작집 『귀머거리새』와 『원미동 사람들』을 출간,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 양귀자는 장편소설에 주력했다. 한때 출판계에 퍼져있던 ‘양귀자 3년 주기설’이 말해주듯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 등을 3년 간격으로 펴내며 동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했다. 탁월한 문장력과 놀라울 만큼 정교한 소설적 구성으로 문학성을 담보해내는 양귀자의 소설적 재능은 단편과 장편을 포함, 가장 잘 읽히는 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아마조네스는 어떻게 사람이 되었나
.본질.
젊은 여성이 인기 남자배우를 납치하고 조종한다는 파격적인 소재의 이 소설은 1992년에 발매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를 떠나 이 작품의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 책이 아직도 끝없이 읽히고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산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주인공인 강민주는 신화적 특징을 가진다. '남성 본위의 제도나 질서가 신화적일 정도로 뿌리가 깊다면, 단순히 실존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반항은 근원적이지 못'(362쪽)하기 때문에 작가는 주인공에게 신화적 특징을 부여했다. 강민주는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가 이 땅의 사람들과 같은 조건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9쪽), "나는 신의 자식이다"(145쪽) 등의 말로 인간과 자신을 끝없이 분리하며 읽는 독자에게 그녀의 신화적 면모를 상기시킨다.
이 책은 단순히 '현실적으로 여성 차별을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에 비현실성을 부여함으로써 현실의 한계를 넘어 단숨에 그 본질로 달려가게 한다. 다시 말해 강민주는 '모든 여성의 꿈의 집합체라는 이미지'(361쪽)를 가짐으로써 이 책이 다루는 문제가 단순히 강민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불합리.
강민주는 사람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낸다. '나는 그 남자와 연관된 그 무엇도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다'(90쪽)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도 하고, '어머니와 나의 삶은 별개'(119쪽)라며 가족에 대한 연대보다는 개인과 개인으로 사람을 구분 짓는다. 또 '나는 연약한 이 땅의 여자들에게 절망한다'(256쪽)고 외치는 모습은 결국 자신은 혼자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되뇌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와도 연대를 느끼지 않는 강민주라는 캐릭터는 이 세상에 뿌리 깊게 자리한 사회적 약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소외감'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택해버리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그 비극적인 모습이 연상된다.
강민주는 세상의 불합리함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해나간다. 인기 남자배우를 납치하여 그녀는 두 가지 성취를 이루고자 한다. 첫째는 남성에 대한 환상을 부수는 것이다. 강민주는 '백승하'라는 인기 배우가 여성들의 선망 대상이 되면서, 여성들이 남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더 나아가 여성들은 백승하 같은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제대로 된 남자를 택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둘째로는 복수다. 강민주는 백승하를 길들이겠다고 다짐한다. 이는 단순히 사람이 사람을 굴복시키는 복수가 아니다. 여성 꿈의 집합체로서 남성을 굴복시킨다는 더 큰 차원의 의미를 가진다.
강민주의 이런 극단적인 행위들이 누군가가 보기엔 인상이 찌푸려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요 이상의 적대감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소설이므로, 강민주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357쪽)는 작가의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그녀가 신화적 특징을 가진 비현실적인 캐릭터임을 받아들이며 읽어내야 한다.
.연극.
소설이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강민주는 초반의 '강력한 신화적 특징'을 조금씩 잃는다. 바로 연극에 의해서이다. 강민주는 백승하와 연기를 연습하면서 심리적인 유대감을 쌓는다.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강민주는 그저 극본 속 등장인물이 되고, 그녀의 생각이 아닌 등장인물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신화적 존재인 주인공이 인간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모습이다. 강민주는 연극 연습을 통해 백승하와 인간적 감정을 교류하게 된다. 그 순간에는 남성도 여성도, 신도 인간도, 복수도 환상도 없다. 그저 두 존재가 있을 뿐이다.
연극 연습 이후, 그녀의 계획에는 착오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녀는 충동적인 감정에 흔들리거나 실수를 저지른다. 백승하가 그녀를 향해 '어차피 이 세상에 속한 사람'(331쪽)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강민주가 인간 세계에 완전히 진입했음 확신할 수 있다. 그와 별개로 강민주가 신화적 특성을 잃자마자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은 마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은 수많은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진형준 문학평론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마조네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아마조네스는 '그리스 신화에 전해오는 전설적 여인족, 혹은 그들의 왕국'을 이르는 말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눈을 멀게 하거나 절름발이로 만들어 버린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혹은 아예 죽여버린다고도 전해진다."(359쪽) 아마조네스의 시각으로 본다면 '연극'은 강민주를 파괴하고 신화적 특징을 앗아가는 부정적인 매개체이다. 그러나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연극'은 강민주에게 인간적 감정을 안겨주고,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존재와 감정적 교류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매개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론적으로 '연극'은 강민주를 아마조네스에서 사람으로 변화하게 했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우리 삶에 이 연극의 부드러움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것이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유형무형의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알아야 할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가."(336쪽) 우리는 사회의 이면을 못 본 채하고 불합리에 사람을 가두어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그들을 지워버린다.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져야 한다. 이 부드러움이 진정 불합리와 부조리, 폭력, 차별이 사라질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당신은 이것들을 끝없이 생각해야 한다. 결국 당신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책 속 한 문장
이것은 연극일까, 삶일까
❣︎ 작가의 다른 책 살펴보기 전체보기
❣︎ 같은 분야 책 살펴보기 전체보기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붕대 감기(윤이형) : 연대, 재생산되는 차별을 막고 함께 나아가기 (0) | 2021.08.01 |
---|---|
공부머리 독서법(최승필) : 독서, 활자가 열어주는 부드러운 대화의 세계 (0) | 2021.07.31 |
아티스트 인사이트 : 차이를 만드는 힘(정인호) : 표류할 것인가, 항해할 것인가 (0) | 2021.07.29 |
동급생(히가시노 게이고) : 단 한 명의 아이도 죽지 않는 학교 (0) | 2021.07.28 |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임세원) : 희망의 실체를 증명하는 오늘 (0) | 2021.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