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정세랑) : 모두가 춤을 춘다
Book 2020. 10. 8.
피프티 피플
저자 정세랑 | 출판 창비 | 발매 2016.11.21.
책 소개
정세랑 장편소설. 2016년 1월~5월 창비 블로그 연재 당시 50명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으로,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또는 단단하게 연결된 병원 안팎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50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소설 속에서 한사람 한사람이 처한 곤경과 갑작스럽게 겪게 되는 사고들,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은 현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안과 멀지 않다.
정세랑은 특유의 섬세함과 다정함으로 50명의 주인공을 찾아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맞잡아주고 있다. 그 손길을 통해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우리 사회가 같이 이겨내야 한다고, 그래야 후회 없이 다음 세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작가의 믿음을 전한다.
저자소개
정세랑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가 있다.
수상 : 2017년 한국일보문학상, 2013년 창비장편소설상
목차
송수정 / 이기윤 / 권혜정 / 조양선 / 김성진 / 최애선 / 임대열 / 장유라 / 이환의 / 유채원 / 브리타 훈겐 / 문우남 / 한승조 / 강한영 / 김혁현 / 배윤나 / 이호 / 문영린 / 조희락 / 김의진 / 서진곤 / 권나은 / 홍우섭 / 정지선 / 오정빈 / 김인지 오수지 박현지 / 공운영 / 스티브 코티앙 / 김한나 / 박이삭 / 지현 / 최대환 / 양혜련 / 남세훈 / 이설아 / 한규익 / 윤창민 / 황주리 / 임찬복 / 김시철 / 이수경 / 서연모 / 이동열 / 지연지 / 하계범 / 방승화 / 정다운 / 고백희 / 소현재 / 그리고 사람들 / 작가의 말
❥ 모두가 춤을 춘다
.퍼즐.
퍼즐을 맞추다보면 가장 어려운 것은 배경을 맞추는 일이다. 테두리를 차지하는 조각들은 모양이 달라 눈에 띄고, 강렬한 조각들은 자리를 찾기가 쉽다. 하지만 나는 테두리를 차지하는, 강렬한 영웅이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에 가깝다. 마치 백색의 조각들처럼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백색의 조각들이 서로 손을 소중히 맞잡고 배경을 채워가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보면서 나와 유독 닮은 조각들에는 더욱 애착이 가곤 한다.
세상이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잡아매는 것은 무심히 스치는 사람들을 잇는 느슨하고 투명한 망(網)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p.393, 작가의 말
퍼즐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화려한 조각이 아니라고 실망할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평범하고 똑같아 보이는 조각 하나라도 단 하나가 없으면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다. 퍼즐을 실수로 맞추다 떨어뜨렸을 때 부서지고 흩어지지만 여전히 서로를 붙잡고 있는 조각들이 있다. 바로 이것이 정세랑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망'이 아닐까?
나는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때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만나서 놀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고, 용건 외의 연락은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 간의 정'이 사라졌다는 이른바 흉흉한 시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람의 정이 없어지는 이 순간에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연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위기를 맞을 때, 서로를 놓지 않는 몇몇의 퍼즐 조각들처럼 나도 그들의 손을 놓지 않고 세상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세함.
아직 정세랑 작가님의 작품은 <피프티 피플> 외에는 읽어본 적이 없다(이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보건교사 안은영>도 읽어보고 싶어 구매했다). 그럼에도 정세랑 작가가 얼마나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50명쯤 되는 사람들은 정말 실존하는 인물들 같다. 사실, 실존하는 인물을 가지고도 그렇게 촘촘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책을 읽으면서 울거나 진심으로 마음 아파해본 적이 없다. 특히 실제 이야기를 다룬 글이 아닌 '소설'은 완벽히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기뻐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감탄한 부분은 <그리고 사람들>이라는 마지막 목차인데, 이 글 속에는 소설에서 앞서 언급된 모든 인물들이 등장한다.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고 모두 같은 극장 안에서 위기를 맞는 장면이 펼쳐진다.
소현재는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p.383, 그리고 사람들
이 구절을 보고 정말 감탄했다. 소설의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대체 왜?'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소현재는 소설 속에서 '공기의 질'에 민감한 사람이다. 좋지 않는 향들을 맡으면 쉽게 구토하고, 눈이 가렵거나 하는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난다. 또 그는 "믹서기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건 나약한 게 아니에요."라며 부조리한 어른에게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한 영화관에서 맞는 위기는 화재다. 불이 나서 다 같이 대피를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 장면에서 이 구절이 얼마나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설정인지를 보여준다. 공기에 예민한 그가 가장 먼저 반응한다는 당연하지만 놓치기 쉬운 설정들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인듯하다.
.알고보면.
1. 피프티 피플의 원제는 <모두가 춤을 춘다>였다. 작가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삽입했다고 한다. 단순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나는 피프티 피플 속 인물들 중 춤을 추는 인물들을 모두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송수정 엄마 | 엄마가 고전무용을 하듯이 한쪽 손을 멋들어지게 들고 그 자리에서 장난스럽게 한바퀴 돌았다. | p.12 |
권혜정 | 신이 나서 바 위로 기어올라갔다. | p.21 |
문영린 | 장난스럽게 부엌에서 거실까지 춤을 췄다. | p.128 |
박지혜 | 시카고의 유명한 곡 한 소절을 불러주었다. 가볍게 손짓도 하면서. | p.163 |
박이삭, 강한영, 지연지 | 한영은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춤을 췄고 지지는 깡총깡총 뛰는 수준이었지만 셋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엉망인 춤 같았다. 아이들이 추는 춤 같았다. |
p.221 p.338 |
지현 | 여러모로 유쾌한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현이 제 흥에 겨워 콘트라베이스를 돌리며 춤을 추면 관객들은 좋아했다. | p.224 |
콜라텍 손님들 | 전날 마감 후 세훈이 바닥에 열심히 뿌려둔 파우더 위로 사람들이 미끄러지며 춤을 추었다. | p.251 |
남세훈 이모부 | 시골 이모부의 스텝이 예사롭지 않았다. 발이 바닥을 부드럽게 스치며 미끄러졌다. | p.259 |
남세훈 | 일곱살 조카의 손을 끌고 세훈도 합류했다. | p.259 |
소은과 친구 | 소은이 센스 있게도 창민은 가만 두고 친구 한명을 끌어내서 둘이 춤을 췄다. | p.278 |
임찬복 어머니 | 막상 어머니가 다시 춤추기 시작한 것은 요양원에서였다. | p.289 |
임찬복 아내 | 아내가 먼저 밸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 p.295 |
도마뱀 인형 | 통화를 끝낸 친구는 책장에 있던 도마뱀 팀 캔을 집어 들어 식탁 위에서 춤추게 했다. | p.312 |
이수경과 친구 | 둘이 어렸을 때 배운 포크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 친구도 수경을 따라 했다. | p.314 |
방승화 | 무심결에 들고 나온 반지 한쌍이 말아 쥔 손 안에서 춤추었다. | p.357 |
그 외에도 춤추는 장면이 더 있을지 모르겠다. 또다시 이 책을 손에 쥐게 된다면 그때는 다른 색 색연필로 열심히 밑줄 그어가며 찾아보는 걸로!
2. 관계성
출처: https://twitter.com/panpyrin_9/status/1146760882631823360?s=20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인물 간의 관계를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글링을 하다가 완벽하게 정리된 인물관계도를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먼저 읽고 저 관계도를 살피면, '아 저 사람이 저 사람이었어?' 하며 놀라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3. TMI
3-1. 도마뱀 캐릭터는 실존하지 않는다.
3-2. 총 51명의 인물이 나오며, 목차에 없는 인물들도 많아 실제로는 50명을 훌쩍 넘는다.
아무튼 이 책은 정말 두고두고 다시 읽을 것 같다. 다정한 문체가 나를 감싸안는 느낌을 받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혹시라도 선물할 책을 고민하고 있다면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을 추천한다.
책 속 한 문장
지금껏 너무 많이 가졌다.
잃어도 좋다.
❣︎ 작가의 다른 책 살펴보기 전체보기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 일상 속의 영웅들 (0) | 2020.12.13 |
---|---|
살고 싶다는 농담(허지웅) : 살아남는다는 것 (0) | 2020.12.12 |
당신이 옳다(정혜신) : 진정한 공감의 의미 (0) | 2020.10.04 |
김지은입니다(김지은) : When they go low, We go high (0) | 2020.10.03 |
인간 실격(다자이 오사무) : 불행과 죽음은 반의어 (0) | 202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