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허지웅) : 살아남는다는 것

Book 2020.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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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작가 허지웅 |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 발매 2020.08.12.


 

 

 

책 소개

작가 허지웅이 2018년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뒤, 인생에 대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시각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신작 에세이다. 저마다 자신만의 무거운 천장을 어깨에 이고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기대어 쉴 곳 없이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25편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불행을 탓하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칫 더 큰 피해의식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불행한 현실 탓에 나만 이렇게 억울한 상황에 놓였고, 불행하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절망감의 악순환이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불행이란 설국열차 머리칸의 악당들이 아니라 열차 밖에 늘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껴안고 공생하며 함께 인생을 버텨나가야 하는 감정으로서 불행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죽음과의 사투 끝에 삶으로 돌아온 작가 허지웅이 힘겨운 현실에 시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조언이자 결국 오늘도 버티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따뜻한 위로다.

 

 

 

저자소개

허지웅
《필름2.0》과 《프리미어》, 《GQ》에서 기자로 일했다.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 소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60~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다룬 『망령의 기억』을 썼다.

 

 

 

목차

들어가는 글

Part 1.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Part 2.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Part 3. 다시 시작한다는 것

 

 

 

❥ 살아남는다는 것


.비극.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기만이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 명에게 천 가지 천장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p.45, 천장과 바닥 

 

 

 생사의 갈림길에 서본 사람으로서 단순히 산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옥죄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저자의 말처럼 고통의 크기와 정도를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눈을 뜨는 순간순간이 끔찍하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어떤 일이 나에게 발생했을 때 그 일을 자체보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느냐'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논리에 어긋남에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 쉬울 뿐이다. 나는 어떤 일이 생기면 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원인을 뒤적였다. 어디선가부터 일이 꼬였는지, 어떤 부분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인지 수없이 자가 검열을 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p.57,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보면 괜히 뚫어져라 몇초간 쳐다보았다가 여러 번 읽어 마음에 담게 된다.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와 닿을 수가 있을까?

 

 

 저번에 읽은 새벽의 오늘 이 슬픔이 언젠가 우릴 빛내줄 거야라는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열이 나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치료 기간도 아닌데 열 때문에 다시 입원해야 하는 것이 서러워서 화가 났다고. 우리는 힘든 시간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예견된 상황보다 갑작스러운 비극에 무방비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비극은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수용할 수 없는 마음은 결국 분노가 되어 내 자신을 더 갉아먹는다. 이걸 깨닫고 난 후로는 받아들이는 연습을 최대한 많이 하는 중이다.

 


..

 

 나는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한다. 내가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까지 불쌍히 여겨가며 그들의 입맛에 따라 내가 재단되는 것이 싫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끊임없이 궁금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이런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 양면성 때문에 인간관계가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잡히지 않을 것 같이 먼 사람이 있다. 또 멀다고 생각했는데 내 삶을 돌아보면 항상 내 옆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 인간관계는 저자의 말처럼 거리를 셈하는 일 같다. 더 나아가 오래 유지되는 관계는 단순히 셈을 넘어서 속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데여보고 부딪혀보기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본인의 위악을 의도적으로 숨기려는 사람들을 멀리 할 것. 이것은 솔직함과는 다른 문제다.

 

 

 나는 아직 어리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전히 이어지는 감사한 인연들이 있다. 이 인연들을 곱씹을수록 참 삶에 감사하게 된다.

 


.감추는 법.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무슨 일이든지 내 이름 석자를 적고 시작하면 더 잘하고 싶고 더 열심히하고 싶어 진다. 그러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단순히 내 개인적인 블로그에 독서 감상평을 남기는 이 일 역시도 가끔은 내가 틀릴까 봐 두렵다.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누군가에게 혼란을 줄까, 상처를 줄까 두렵다. 누구 하나의 마음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나약한 부분을 드러냈더니 약점 삼아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내 약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를 까내린 것은 아니다. 정말 교묘하게 말 그대로 '가스라이팅'을 했다. 사실 이게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더 나를 감추는 법을 배웠다.

 

 

 

 슬픔을 나누면 행복이 되거나 최소한 슬픔이 쪼개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옳다고 생각하는 걸 실험하기 위해 실명으로 자기의 삶을 공유해선 안 된다. p.216, 가면을 벗어야 하냐는 질문 

 

 

 이 책은 이상적인 조언만 나열한 책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을 온전히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또 있어도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조심스러운 편이다(원래 내 이야기를 잘 안 하고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내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적어도 내가 신뢰한다는 뜻이다. 어디 가서 나의 이야기를 재미 삼아 이야기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분명히 또 실수를 한다. 다 끝나버린 인간관계를 붙잡고 있는다든지, 미련하게 한 사람을 싫어해도 보았다가 어쩔 때는 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겠지.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겨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겨본 사람은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믿는다.


 

 

책 속 한 문장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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