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 어린이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Book 2021.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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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저자 김소영 | 출판 사계절 | 발매 2020.11.16


 

 

 

>  어린이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어린이.

 

  아주 예전에는 어린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양가의 막내로 태어나 가까운 동생 하나 없이 자랐다. 게다가 어릴 적 놀이터에서 모여 놀던 동네 친구들도 전부 언니, 오빠였다. 나이를 먹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어린이를 접할 기회가 적으니 그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저 내가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이미 졸업했다며,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로 생각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길을 걷다 보면 셀 수 없이 스쳐 지나가는 어린이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모든 어린이가 이 세계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나와 같이 어린이의 존재를 외면해왔던 모든 이들에게 어린이가 여기에 '있다'고 외치는 책이다.

 

  어린이와 어른은 한평생 같이 살았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세계 곳곳에는 어린이와 어른이 있었다. 어린이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어린이는 자꾸 '어린이'라는 추상적인 집단으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걸까? 어린이와 어른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 둘은 왜 평등한 위치에 놓이지 못하는가.

 


.어른.

 

  항상 어른을 동경했다. 선호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릴 때면 빠지지 않던 조건이 '어른스러움'이었다. 이 '어른스러움' 안에는 굉장히 복합적인 이상이 포함되어 있다. 풀어보면, '성숙한 태도와 유쾌한 마음을 가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왜 나는 이러한 구체적인 서술을 '어른'이라는 단어에 가두어 생각했을까? 아마 어른에게만 배울 수 있다는 오래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문자나 편지들이 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받았던 문자 몇 통이 그렇다. 특히 '학교는 학생들에게서도 배우는 곳'임을 깨달았다며 나를 대견하다고 말씀해주셨던 내용은 살면서도 문득 떠올라 나를 울컥거리게 만든다. 누구보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선생님께서 나에게 배웠다고 표현한다는 게 뭉클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어른에게만 배울 수 있다는 낡은 생각을 부숴버린 전환점이기도 했다.

 

  어른이 항상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조금 더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규칙이나 생활 습관을 가르치는 것,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람직한 교육을 전해주는 것은 분명 어른의 몫이다. 그러나 어른도 어린이를 보며 배울 수 있음은 확실하다. 이 점을 깨닫는다면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20쪽)게 될 것이다.

 


.이름.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나를 '어린이'라는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 중 하나로만 생각한 적은 없었다. 또한 미래를 이끌어나갈 주역이라는 생각도 온전히 내 스스로 떠올려낸 적은 없었다. 가족의 부속품이라거나 부모님의 소유물이라는 생각 또한 해본 적이 없다. 어린이였던 나는 어른 아래에 속한 무언가가 아닌, 그냥 나 자신이었다. 어른들이 자신을 '어른' 중 그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은 자꾸만 한 덩어리로 취급된다. 어른 슬하에 있는 작은 집단, 누군가의 소유물.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쥐여주는 참 이상한 세상이다.

 

  내 주변의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한 아이가 떠올랐다. 입원했을 시기, 옆 침상에 누워있던 여자아이였다. 나는 병원 아래 마트에서 엄마가 사 온 새콤달콤을 먹고 있었는데, 아이가 그 옅은 향을 맡았는지 먹고 싶다고 해서 몇 개를 나누어주었다. 결국 우리 두 사람 모두 그 새콤달콤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곤욕을 치렀지만, 그 작은 음식을 나누어 먹던 순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나는 그 아이의 이름도 몰랐다. 그 시기에 만났던 모든 아이들을 그저 '어린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의 이름을 찬찬히 살펴보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한다. 이 책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날 수 있었다면, 진열대에서 새콤달콤과 마주칠 때마다 그 아이의 이름을 떠올려 나만의 작은 안부를 전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린이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 있다."(247쪽)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어린이는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듯,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유하고 나아가는 한 인간이다. 이제는 어린이들에게 각자의 이름을 돌려줄 때다. '어린이'가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을 말이다. "우리에게 자녀가 있든 없든, 우리가 어린이와 친하든 어색하든, 세상에는 어린이가 '있다'"(220쪽).

 


 


 

책 속 한 문장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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