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신경숙) : 삶을 담은 글은 절규와 닮아서
Book 2025. 11. 16.
외딴방
저자 신경숙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14.01.15
> 삶을 담은 글은 절규와 닮아서
.숨.
글자만이 적힌 종이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다. 코끝이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와 흙, 먼지 따위의 냄새가 섞여 공간을 메운다. 거친 살갗이 손등 위로 스치고, 가녀린 목소리는 내 귓가에 성큼 울렸다가 이내 사라진다. 신경숙의 <외딴방>은 그런 소설이다. 너무나 생생하고 섬세해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분이 든다. 그 감정이 혹여나 부서질까 책장을 넘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한 사람의 고뇌를 엿보는 듯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제주 바다 앞에 서 있는 작가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작가와 함께 지금의 바닷바람을 느꼈다가, 아픈 과거에 마음이 미어졌다가, 그것을 옮겨 적으려 시간을 더듬다가, 다시금 열아홉이 되어 눈을 감기를 반복한다. 외딴방에 쭈그려 깨어나 오빠와 외사촌의 온기를 더듬고, 수많은 여공과 희재언니의 얼굴을 그린다. 외면하는 마음을 손에 꽉 쥐었다가, 이내 그 손으로 희재 언니의 문을 잠근다. 제주 바다에 작가의 생애가 비치고 그 모든 것은 파도가 되어 나의 삶으로 밀려온다. 파도는 쇠스랑 소리를 내었다가 딸깍, 딸깍하며 가까워진다. 나를 집어삼키는 파도는 흰 새의 날갯짓과 닮은 듯하다.
숨을 쉬기 위해 어떤 것이든 토해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창작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고,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절박함에서 오는 벅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오롯이 그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생의 파편은 나의 심장을 파고들어 긴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은, 그러니까 작가는, 소설을 ― 더 정확하게는 글을 ― 써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삶.
쳇바퀴에서 뛰면 그것이 제자리일지라도 바쁘게 돌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바닥의 흙이라도 적신다. 그러나 삶은 쳇바퀴도, 독도 아니어서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이 멈춰버리기도 한다. 아무리 달려도 쳇바퀴는 움직이지 않고, 독 아래 흙은 메마르다 못해 모래바람이 날리는 듯하다. 원하지 않는 곳에 머물러야 하는 두려움과, 끝을 향한 간절한 기도. 실낱같던 희망과 소망마저 재가 되면 영혼까지 불타 없어진 나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나의 삶을 움직인 힘이 무엇이었나 돌이켜보면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깨어났던 새벽과 형태도 모를 것을 원망하며 지새운 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어제와, 손아귀에 잡히는 것이 없어 아득해지던 오늘. 조각가와 같은 마음으로 찰흙을 붙였다가, 다듬었다가, 떼어냈다가를 반복한다.
어떤 지점에는 이런 행위들이 모두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우주의 미물이며, 세상에 무엇인가 남기고 떠난다 해도 그것 또한 미물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를 끊임없이 다듬는 과정이 흰 새의 날갯짓과 같이 느껴지다가도, 한순간 벌레의 발버둥과 같이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평생 가꾸어 온 것이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도공이 도자기를 부수듯 미련도 없이 놓아주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글.
사건을 시간순으로 보기 좋게 나열한 것은 정리이지 문학이 아니다. 역사이지 삶은 아니다. 그것은 파도와 같아서 차례대로 흘러오지 않는다. 시간은 한 데 뒤섞여 자비 없이 밀려온다. 파도를 내 품에 다 안을 수 없듯, 삶을 말로 다 옮길 수는 없다. 또, 말로 옮기더라도 글로 다 적어낼 수는 없다. 그것의 일부라도 선명히 적어내기 위해서는 몸부림에 가까운 처절한 절규가 필요하다.
뱉어내기 위해 쓴 글들은 역설적이게도 켜켜이 쌓인다. 뱉어내야 숨 쉴 수 있는 외침들은 글자로 적혀 나의 눈으로 읽히고, 나의 귀로 들리고, 결국 마음에 쌓여 응어리가 된다. 어쩌면 써낸다는 것은 선명히 읽힘으로써 내 안에 다시 쌓이는 행위인 것이다. 삶을 써내면 그 무게는 글자의 곱절이 되어 무겁게 밀려온다. 그러니 삶을 써내는 일은 그 생애를 전부 걸어 내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삶은 부끄러움의 연속이다. 직선으로 흐르는 냉정한 시간 속에서 곡선으로 삶을 살아 나가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직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뿐인 듯하다. 외딴방에서도 꿈을 꿀 수 있도록 "나의 내부의 한 칸을 낳아"준, 처절히 지워진 이름에게 "말을 통하여 의젓한 자리를 세상에 낳아 주"(506쪽)는 일. 이것이 신경숙 작가의 절규이자, 다정이자, 부끄러움을 직면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 길지 않은 생에서 삶을 담은 글을 써볼 수 있을까. 나의 일부를 빚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나의 숨 쉴 통로를 여는 문학을 남길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신경숙 작가는 이것을 끝내 해낸 듯하다.
책 속 한 문장
나의 본질을 낳아준 어머니와 같이,
익명의 그들이 나의 내부의 한 칸을 낳아주었음을......
그래서 나 또한 나의 말을 통하여
그들의 의젓한 자리를
세상에 새로이 낳아주어야 함을......
다정한 유전(강화길) : 새겨진 다정함으로 연결되는 우리
다정한 유전저자 강화길 | 출판 아르테 | 발매 2020.10.14 ❥ 새겨진 다정함으로 연결되는 우리.우리. 사람은 비슷하다. 같은 종(種)에서 기인하는 공통점이다. 강화길 작가의 《다정한 유전》은 그
onlyunha.tistory.com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 아마조네스는 어떻게 사람이 되었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저자 양귀자 | 출판 쓰다 | 발매 2019.04.20 초판출간 1992년 책 소개 작가 양귀자의 장편소설. 1992년에 초판이 나오자마자 바로 페미니즘 논란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onlyunha.tistory.com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정한 유전(강화길) : 새겨진 다정함으로 연결되는 우리 (0) | 2025.02.17 |
|---|---|
| 젊은 ADHD의 슬픔(정지음) : 평범이라는 환상 (0) | 2023.09.16 |
| 마른 여자들(다이애나 클라크) : 1 킬로그램의 가능성 (1) | 2023.09.14 |
|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유지혜) : 가장 두려운 동시에 용감한 (0) | 2023.07.17 |
| 죽은 시인의 사회(N.H 클라인 바움) : 죽음으로서 알게 된다면 (0) | 2023.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