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장 폴 사르트르) : 희망없이 행동하라!

Book 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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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저자 장 폴 사르트르(지은이), 박정태(옮긴이) | 출판 이학사 | 발매 2008.01.31

원제: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1946)


 

 

책 소개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고전적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반성적 논의가 활발히 전개된 정황 속에서 장 폴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뒤에 그 강연에서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든 책.

책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실존주의에 대한 개론적인 이해고, 둘째는 그 당시 실존주의에 가해지던 주요 비판에 대한 반박, 마지막으로는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 강연, 그리고 이 저작을 통해 사르트르는 자신의 과거 경향인 안티휴머니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존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 실존주의로부터 도출되는 또 다른 의미의 휴머니즘인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을 제창한다. 휴머니즘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이에 대한 20세기 한 지적 거인의 견해를 볼 수 있는, 얇지만 긴요한 책이다.

 

 

 

저자소개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지은이) 
파리에서 태어나 1929년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1-46년에는 교사 생활을 하였다. 학창시절 결합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와 평생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으며, 전쟁 중인 1939년 징집되어 1940년 포로가 되었다가 1년 만에 석방된다. 교사 시절 발표한 일기체 소설 「구토」(La Nausée, 1938)로 첫 명성을 얻은 뒤 여러 편의 철학적 작품들을 집필하는데 그 중 대표는 “인간 의식 또는 비사물성(néant, 無)을 존재, 즉 객관적 사물성(être, 存在)과 대비시킨”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1943)일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옹호한 그는 종전 후 사회적 책임에 눈을 돌려 소설과 희곡으로 윤리적 메시지를 전한다. “자유의지와 선택, 그리고 행동”이란 주제는 「파리떼」(Les Mouches, 1943), 「닫힌 방」(Huis-clos, 1944), 「더러운 손」(Les Mains sales, 1948), 「악마와 선신」(Le Diable et le bon dieu, 1951) 등 희곡은 물론 그가 장 주네(Jean Genet, 1910-1986)에 대해 쓴 「성(聖) 주네, 희극배우와 순교자」(Saint Genet, comédien et martyr, 1952)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정치적으로는 분명 좌파였으나 화석화한 현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며 “공산주의는 다른 구체적 실존상황을 인정하는 법과 인간의 개인적 자유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1964년 자전적 소설 「말」(Les Mots, 1963)이 노벨상을 받게 되지만 수상을 거부한다. 
수상 : 1964년 노벨문학상
박정태 (옮긴이)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에서 근무했다. 프랑스 랭스대학에서 석사학위(사르트르 전공)를 받았으며, 파리10대학 D.E.A.(베르그송 전공)를 거쳐, 파리8대학에서 바디우의 지도 아래 들뢰즈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귀국해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철학자 들뢰즈, 화가 베이컨을 말하다』(이학사, 2012), 공동저서로 『마음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포스트모던의 테제들』(사월의책, 2012), 『데카르트에서 들뢰즈까지』(세창출판사, 2015)가 있고, 번역서로 『들뢰즈-존재의 함성』(이학사, 2001),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이학사, 2007),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학사, 2008), 『세기』(이학사, 2014)가 있다.

 

 

 

목차

강연의 상황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토론

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될 옮긴이의 실존주의 용어 해설
옮기고 나서

 

 

 

 

 

❥ 희망없이 행동하라!


.자유와 불안.

 

 이처럼 정말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간은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p.34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 사르트르의 주장, 그리고 그가 설명하는 '불안'과 자유'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앞선 명제를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사르트르의 주장대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본질이라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선택으로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더불어 인간은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인가에 대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책임이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마주하는 끊임없는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이 인간의 삶에 불안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어 인간의 삶과 선택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삶과 불안 역시도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불안'이라는 심리 상태는 삶의 보편적인 상태라고 설명한다. 


.선택과 판단.

 

 우리 자신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타인 또한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p.65 

 

 

 사르트르는 '타인들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답했다. 그는 개개인의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에서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타인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기만'의 영역에서는 판단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기기만은 자기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모순에서 온다.

 

 

 예를 들어 내가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고 해보자. 결국 '일'은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한 것이고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압박과 타인의 시선 등 다른 부가적인 요소로 인해 결정됐다고 대답하게 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자신의 자유에서 온 선택의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자신의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자기기만이 발생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자유를 기반으로 선택하면 그것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판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르트르 주장에는 일부 동의한다. 개개인의 선택이 존중받아야 하며 누군가의 의견에 우열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예외의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는 선행되는 관념이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라는 경계가 모호하다. 사실, 존재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알맞다. 책에서 그는 <플로스강의 물레방아>와 < 파르므의 수도원>의 주인공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들이 동등한 도덕을 가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자유를 기반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p.72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진다. <파르므의 수도원>의 주인공인 상스베리나는 '보잘것없는 여인과의 사랑은 진부한 사랑'이라며 인간적 연대를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했다.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그는 자신의 자유를 바탕으로 선택한 것이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이 명백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진부한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기준을 내세우면서 타인의 가치를 절하시키고 있다. 자유와 선택은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동시에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효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선택과 자유는 모두 동등하다는 사르트르의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피해를 낳는 상황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느꼈다.

 


.희망없이 행동하라.

 

 "무언가를 꼭 희망해야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오래된 경구를 따라서 행동해야 합니다. p.57 

 

 

 사르트르는 '희망 없이 행동하라'고 말한다. 이 가르침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르트르가 말하는 절망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는 절망을 '우리가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에만 기대할 수 있다는 것', 또는 '우리의 행동을 가능케 하는 그런 개연성의 모음에만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일 때 즉, 행동으로 이어질 수 없는 희박한 확률의 개연성에 기대하게 될 때 인간은 절망의 상태에 놓인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을 더 많이 마주한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희망이 가득 찬 상황이라기보다는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실현되기 힘든 가능성에 기대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삶의 태도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혁명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그 혁명운동이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리라는 기대는 실현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혁명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완벽한 승리를 얻을 수 없으니 포기해야 할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으니 절망에 빠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까? 아니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상황에서 '희망 없이 행동하라'고 말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터무니없는 희망에 의존하지 않고 그저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즉,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주장은 실존주의가 정적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실존주의 반대 의견에 대한 반박과도 연관이 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절대 인간을 정적의 상태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상기하게 함으로써 행동하여 나아갈 수 있게 돕는다.

 


 

 자네는 자유롭네, 그러니 선택하게. 즉 발명하게. p.51 

 

 

 나는 '다 잘 될 거야' 같이 모호한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체 없는 희망은 고문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절망에 가까운 희망적인 메시지들이 넘쳐나는 사회에, '희망없이 행동하라'는 사르트르의 말은 나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나 역시도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두려움에 압도되어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기대에 운명을 맡기지 않고 그저 '희망 없이' 행동하게 된다면 역설적이게도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체 없는 희망에 갇혀 절망의 얼굴을 연속해서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또, 시작이라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여전히 그 자리에 겨우 버텨가며 머무는 이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사람을 위해 외치고 싶다. 당신의 행동만이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고. 절망에 빠진 당신, 지금 바로 희망없이 행동하라.

 


 

1. 대학 교양 수업으로 접하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철학의 재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2. 이번 글은 사르트르의 주장과 그에 대한 생각이 주를 이룬다. 이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선택'과 '책임'의 무게, 행동하는 것의 중성, 신의 실존 등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더 글을 써보고 싶다.

3. 이 책 이후로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배웠는데 지금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있다. 내용이 어려워서 몇 달째 붙잡고 있지만, 실존주의를 비롯한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유의미한 변화다.

 


 

 

책 속 한 문장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실존이 결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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