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Book 2021. 8. 12.
공정하다는 착각
저자 마이클 샌델(지은이), 함규진(옮긴이) | 출판 와이즈베리 | 발매 2020.12.01
원제: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2020)
책 소개
‘공정’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두고 각계각층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후 8년 만에 쓴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란 원제로 미국 현지에서 2020년 9월에 출간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진지하게 되짚어본다.
저자소개
마이클 샌델 (Michael Sandel) (지은이)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수업은 현재까지 수십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샌델이 진행 중인 영국 BBC의 정치철학 토론 프로그램 〈위대한 철학자들〉 시리즈는 ‘철학적 아이디어의 이면을 탐구한다’는 주제로, 세계 각국의 토론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27개국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비롯해,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완벽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말하다》(공저) 등이 있다.
함규진 (옮긴이)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약용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능력주의.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에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깔린 '능력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드러낸다. 능력주의의 개념과 역사, 주장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반론한 후 대안과 한계점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능력주의가 가져온 현실의 폐해를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능력주의와 학력주의, 빈부격차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단연 '입시경쟁'이다. 우리나라의 입시 경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등급으로 줄을 세우고 앞 대열의 아이들부터 대학 선택권을 부여받는다. 성적순으로 대학을 선택하는 것.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공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력은 경제적 우위와 구별해서 보기가 어렵'(31쪽)기 때문이다. 빈부격차가 학력의 차이를 만들고 이는 다시, 그들이 '능력'이라고 부른 것의 차이를 낳는다. '2020년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신입생 55%가 소득분위 9~10분위 고소득 가구에 속해있다'(6쪽)는 사실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SAT 평균점수가 올라간다'(259쪽)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능력주의자들은 운을 부정하고 경제적 조건을 '능력'이라고 치부하며 자신의 성공을 오롯이 자신의 몫으로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능력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 실패를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지탄한다.
학위와 성공 따위가 개인의 노력에만 달렸다는 주장은 '개인주의'를 강화한다. 대학 입시의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국가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교육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을 면죄부 삼아 능력주의의 발판을 다진다. 같은 것을 제공해주었으니 그 이후는 개인의 문제라는 식이다. 이것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능력주의'의 이면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나 당장의 안전을 위협받는 아이들의 상황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교육을 받고, 종일 공부할 환경이 제공된 아이들과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친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사회의 책임을 약화한다. 낙오한 이들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기며,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로 떠넘기는 것이다.
.존엄.
경영자는 숭고하고,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가? 대학 졸업장을 가진 사람은 훌륭하고, 대학의 문턱도 밟아 보지 않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가? 능력주의자들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151쪽)하여 세상의 연대를 가로막는다.
연대 의식을 느끼는 공동체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명문대학에 나오지 않은 이들과는 거리를 두고, 선을 긋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대학 내에서도 출신 고등학교, 집안 등을 따져 동아리 부원을 선별하고, '능력'이 비슷한 학생들만 모여 스터디를 조직하기도 한다.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어떤 전형으로 학교에 들어왔는지를 따지며, 선민사상과 우월감으로 뒤덮인 채 타인을 멸시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능력주의자들의 카르텔은 갖가지 잣대 속에서 소수의 사람만이 속해 견고해지고 있다.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하며,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p.51, 1 승자와 패자 :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성공의 사다리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간극이 너무 넓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기가 힘들다. 능력주의자들은 그러한 현실은 생각하지 않은 채 개인의 노력만을 탓한다. 노력하면 닿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다. 능력주의의 허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정'이다. 자신이 가진 것이 자신만의 몫이 아님을 진심으로 깨닫고 나서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노동의 존엄과 인간의 가치, 조건의 평등과 약자에 대한 배려. 이 모든 것들의 건강한 논의가 진정으로 필요하다.
.연대.
우리는 결국 같이 살아야 한다. 이것이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나는 능력주의가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믿는다. 타인의 배려가 결여된 채, 공동체 의식을 약화하는 능력주의는 '연대'의 힘을 결코 이길 수 없다. 능력주의가 팽배해질수록 복지국가는 해체될 것이고, 복지 정책과 지원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의 책임이 개인에게로 전가되면서 약자들이 더욱 고통받는 시대가 열린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능력주의 사회의 기득권은 소수의 엘리트가 차지한다. 당신의 위치가 높다며 능력주의 사회를 반기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당신도 언제든지 '약자'에 속할 수 있다. 당신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신은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며,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능력주의 사회를 꿈꾸고, 자신의 우월감에 심취하는 것만큼 오만한 일도 없을 것이다.
당신이 가진 것이 정말 당신의 것인가. 당신의 배경과 경제적 여유, 많은 운과 도움을 준 사람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운마저도 자신의 능력이라 주장한다면, 결국 자신이 가진 능력은 '운'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능력주의자들의 논리는 이렇게 간단한 질문 몇 개에도 금방 무너진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도 여전히 능력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이 가진 것이 오롯이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능력주의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도 힘든가?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다. 당신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책 속 한 문장
그런 것들은 우리 스스로 얻는 것들인가,
받는 것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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